나로 살기로 했다
다섯 번째 수술 후, 나는 세 번째 항암을 거부했다
다섯번째 수술을 마치고 한달 뒤 결과를 듣기 위해 진료실에 앉았다.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항암을 하셔야 합니다."
나는 더 담담하게 대답했다.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짧은 침묵이 진료실을 채웠다. 창밖으로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게 포기일까, 아니면 선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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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의 수술이었다.
숫자로 쓰면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섯 번의 전신마취와 다섯 번의 회복실 천장과, 다섯 번 마취에서 깨어날 때마다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확인하던 그 순간들이 있었다.
8년이었다.
내 40대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병원과 집, 집과 병원 사이를 오가며 살았다.
항암치료를 두 번 버텼다. 버텼다는 표현이 맞다. 견뎌낸 게 아니라 버텼다.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쯤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보다 견디기 어려운 건 따로 있었다. 밥 냄새가 역겨워지는 것,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조차 소음처럼 느껴지는 것, 무엇보다 내가 나 같지 않아지는 것. 몸이 아픈 것보다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더 무서웠다.
그래서 세 번째 항암 앞에서 나는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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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해한다. 치료를 거부하면 삶을 포기한 거라고. 하지만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항암은 *더 오래 살기 위한* 선택이었고, 나의 선택은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숫자로 주어지는 생존율보다, 오늘 하루를 내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죽음이 무섭지 않았냐고? 물론 무서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게 있었다. 살아는 있는데 살고 있지 않은 것. 치료를 위해 존재하면서 정작 삶은 어디에도 없는 것. 그 공허함이 나는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삶의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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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문을 연다.
공기가 차든 따뜻하든, 그냥 바깥 공기를 한 번 마신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게 나에게는 오늘도 살아있다는 확인 의식이 됐다.
밥은 내가 먹고 싶은 걸 먹는다.
몸에 좋다는 것들만 억지로 삼키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맛있는 걸 먹는 것 자체가 치료라고 믿는다.
걷는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그냥 오늘 내 몸이 갈 수 있는 만큼만. 무리하지 않되, 멈추지도 않는다.
이게 8년 동안 내가 스스로에게 가르친 유일한 원칙이다.
그리고 기록한다. 잘 버틴 날도, 무너진 날도. 오늘이 힘들었다고 쓰는 것만으로도 내일을 살 이유가 생기더라. 누군가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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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살아남은 여자'다.
대단한 의지로 살아남은 게 아니다.
그냥, 오늘 하루를 내 것으로 살기로 했을 뿐이다.
그 선택을 매일 반복했더니 2년이 됐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반복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런데 그것도 이제는 괜찮다.
오늘 살아있으면, 오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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