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잃고 나서야, 내가 보였다

4화 | 두 번 밀어낸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로

by 송하루

거울 앞에 서지 못했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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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치웠다.

첫 번째 항암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세면대 앞 거울, 화장대 거울, 옷장 문에 붙어 있던 전신 거울까지. 볼 때마다 낯선 얼굴이 거기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나는 그냥 거울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한동안, 나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을 때, 나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의사는 말했었다. "항암 중에 머리카락이 빠질 수 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될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처음엔 베개 위에 몇 가닥이었다. 다음 날엔 더 많았다. 그다음 날엔 샤워 후 배수구가 막힐 만큼 쌓였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 손가락 사이로 우수수 빠져나왔다. 한 움큼씩, 한 움큼씩. 나는 그것을 한참 바라보다 손을 씻었다. 뭔가를 느낄 새도 없이 그냥 씻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미용실에 갔다.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말을 못 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 평범한 질문이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잠시 후 나는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다 밀어주세요."

바리캉 소리가 켜졌다. 울지 말자. 여기서 울면 안 된다.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반쯤 밀린 내 모습이 거울에 나타난 순간, 나는 그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미용사는 손을 멈추었다. 가위도, 바리캉도 내려놓고 잠자코 기다렸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날 잘려나간 것은 머리카락만이 아니었다. 오래 익숙했던 내 모습. 거울 속에서 나를 알아볼 수 있다는 감각. 아무렇지 않게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당연함. 그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민머리로 처음 밖에 나간 날을 기억한다.

모자를 쓸까, 가발을 살까, 스카프를 두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나갔다. 어차피 다 알 것이라는 체념이었다. 가발은 어색하고 무거웠고, 모자는 답답했다. 그냥 내 얼굴로 걸어 다니기로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보고 고개를 돌렸고, 어떤 사람은 잠깐 멈칫했다. 아이들은 가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엄마에게 뭔가를 물었다. 나는 그 시선들을 등으로 받으며 걸었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그게 용감한 척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용기였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민머리로 살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꾸미는 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가꿀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편해졌다. 거울을 안 봐도 됐고, 아침에 머리를 매만지는 시간이 없어졌고,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는 에너지가 사라졌다. 처음으로, 외모에서 자유로워지는 경험이었다.

첫 번째 항암이 끝나고,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처음엔 솜털처럼 가늘게. 그다음엔 조금씩 색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울을 다시 꺼냈다. 세면대 앞에만 하나 다시 걸었다. 조심스럽게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거기 있는 얼굴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낯설지만 싫지 않았다. 이 얼굴도 나구나, 하는 감각.

머리카락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자랐을 때, 나는 처음으로 립스틱을 발랐다.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냥, 오늘 바르고 싶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생각했다. 어, 괜찮은데. 아프기 전의 내가 아니어도, 이 모습도 나일 수 있겠구나.

그 작은 감각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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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재발이 왔다.

두 번째 항암이 시작됐고, 머리카락은 다시 빠졌다. 이번엔 더 빠르게, 더 많이 빠졌다. 힘겹게 다시 자란 것들이 또다시 베개 위를 덮었다. 나는 그것을 처음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봤다. 슬프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첫 번째와는 달랐다.

미용실에 다시 갔다. 같은 미용사였다. 그가 나를 보더니 말없이 케이프를 둘러주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말했다.

"또 밀어주세요."

이번엔 울지 않았다. 바리캉 소리가 켜지고, 머리카락이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미용사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편했다. 다 밀고 난 뒤 거울을 봤다. 민머리의 내 얼굴. 이번엔 낯설지 않았다. 이 얼굴도 이미 알고 있었다.

울지 않은 것이 강해진 것이라고 말하면 좋겠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더 이상 그것이 나를 무너뜨릴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잃어본 것을 다시 잃는 일은, 처음 잃는 것보다 덜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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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만이 아니었다.

배꼽 위부터 골반 아래까지 길게 이어진 수술 자국. 다섯 번의 수술이 남긴 흉터들이 서로 겹쳐 있었다. 처음엔 그 흉터를 절대 보지 않으려 했다. 샤워할 때도 아래를 보지 않았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최대한 빠르게 눈을 피했다. 그것을 보면 이 몸이 겪어온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를 것 같았다.

다섯 번째 수술 뒤 소독을 받으러 갔다가, 간호사가 말했다. "어머, 이 상처로 혼자 오셨어요?" 그 말에 처음으로 내 흉터를 제대로 바라봤다. 간호사의 눈에는 놀라움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은 측은함이 아니었다. 오래 버텨온 것에 대한 어떤 경외 같은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조금씩 내 흉터와 눈을 맞추기 시작했다. 샤워할 때 잠깐씩. 거울 앞에 서서 조금씩.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것이 내가 살아온 시간의 지도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래 걸렸다.

흉터는 상처의 흔적이 아니었다. 살아낸 증거였다.

두 번째 항암이 끝나고,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이번엔 그 과정을 지켜봤다. 솜털처럼 돋아나는 것을 매일 아침 거울에서 확인했다. 1밀리, 2밀리, 3밀리. 느리고 가늘었지만, 분명히 자라고 있었다. 그 속도가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이 몸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구나. 잘려나가도, 빠져나가도, 다시 자라려고 하는구나.

머리카락이 자라는 속도로, 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거울을 다시 걸었다. 화장대 앞에도, 옷장 문에도. 오래 피했던 내 얼굴을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다. 아프기 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흉터도 있고, 아직 머리카락도 짧았다. 하지만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이 얼굴이 나였다. 이 몸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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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 거울 앞에 얼마나 오래 섰나요.

어떤 사람들은 거울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며 자신을 지운다. 더 예뻐야 하고, 더 날씬해야 하고, 더 어려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맞춰 자신을 깎아낸다. 어떤 사람들은 반대로, 거울을 아예 피한다. 지금의 내가 싫어서, 이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깨달았다. 거울 속의 나를 좋아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을.

당신의 지금 이 모습이, 이미 당신이다.

더 나아지기 전의 지금도, 아직 회복 중인 지금도,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지금도. 그 모습 전부가 당신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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