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한 달 전, 나에게 주는 시간

삶이 나를 시험하는 방식은 참 다양하다.

by 송하루

어떤 이에게는 이별로, 어떤 이에게는 실패로, 그리고 나에게는 수술대 위에 눕는 일로.

여섯 번째라는 숫자를 머릿속에서 굴려본다.

여섯 번. 손가락으로 세어보면 한 손을 가득 채우고도 하나가 더 남는다.

처음 수술을 앞두던 날의 나는 아마 이 숫자가 이렇게까지 쌓일 거라는 걸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이번 한 번만"이라고 믿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버티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다른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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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남았다.

달력을 보면 그 날짜가 괜히 두껍게 보이는 것 같다.

다른 날들보다 조금 더 무겁게, 조금 더 짙게. 친구들은 "잘 될 거야"라고 말해주고, 가족들은 눈빛으로 걱정을 전한다.

고마운 말들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말들이 위로가 되다가도 어떤 날은 외려 더 쓸쓸하다.

아무도 이 감각을 완전히 알 수는 없으니까.

마취에서 깨어날 때의 그 몽롱함, 차가운 수술실 천장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몸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그 이상한 낯섦. 이걸 설명할 언어가 없어서, 그냥 "다 잘 됐어요" 하고 웃고 마는 것이다.

다섯 번을 그렇게 살아냈다.

그러니 이제 나는 조금 알겠다.

두려움을 없애려고 싸우는 것보다, 두려움과 함께 한 달을 걸어가는 법을.


한 달 동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거창한 버킷리스트 같은 건 필요 없다.

다섯 번의 수술을 지나오며 배운 게 있다면, 거창한 결심은 결국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지" 같은 다짐은 영화 속 대사로는 아름답지만, 실제로 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지쳐 있는 날에는 그냥 죄책감이 된다.

그러니 나는 작은 것들을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제일 비싼 음료를 시켜보기.

오래 읽고 싶었던 책을 침대에 누워 펼치기.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별일 없지?" 하고 먼저 메시지 보내기.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창문 너머로 하늘 구경하기.

좋아하는 음악을 이어폰 없이 크게 틀어놓기.

이런 것들. 누가 들으면 시시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수술 후 회복실에서 "아, 그때 그걸 해볼걸"하고 생각날 건 결국 이런 사소한 일상들이더라.

몸이 아프기 전에, 몸이 자유로운 이 한 달 동안, 내 몸을 조금 더 아끼고 싶다.

무리하지 않는 산책, 맛있는 것을 천천히 씹는 것, 따뜻한 물로 충분히 씻는 것.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기 전에, 당연함에 감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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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날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 달을 앞두고 평온하기만 한 날은 없다.

어떤 새벽에는 눈이 떠지면서 가슴이 먼저 조여온다. 이유도 없이. 그냥, 몸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억지로 괜찮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종이에 쓴다.

핸드폰 메모장도 좋고, 다이어리도 좋다.

무섭다고, 귀찮다고, 왜 나만 이래야 하냐고.

논리 없이 감정을 쏟아낸다.

쓰다 보면 이상하게 조금 가벼워진다.

지금 여기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글이 아니어도 괜찮다.

그냥 꺼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몸을 움직인다.

격렬한 운동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천천히 걷는 것. 특히 나무가 있는 곳, 바람이 지나가는 곳.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때 자연은 이상하게도 "네가 생각하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말은 없는데 왜인지 그런 느낌이 든다.

또 나는 향을 피운다.

라벤더든, 우드향이든. 냄새는 기억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좋은 향 속에 앉아 있으면 뇌가 잠깐 다른 데 가있는 것 같다.

그리고 좋아하는 향수를 뿌려 향기에 취해본다。。

병원에서 나는 소독、약품들 냄새가 날 힘들게 할때면 이 향기를 기억한다。

스트레스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잠시 거리가 생기는 것. 그것만으로도 숨이 트인다.


마음을 가만히 앉히는 법.

밤이 깊으면 나는 천천히 호흡을 고른다.

숨을 들이쉬고, 넷을 센다. 멈추고, 칠을 센다. 내쉬고, 여덟을 센다.

이게 전부다. 처음엔 이런 게 뭔 소용이냐 싶었다. 그런데 해보면 안다. 숫자를 세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뇌가 숫자에 묶여버리는 것이다. 그 잠깐의 고요가, 생각보다 길게 남는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말을 건다. "수고했어." "잘 버텼어." "무서워도 괜찮아."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남에게는 그렇게 잘 말해주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참 인색하다.

다섯 번의 수술을 버텨낸 이 몸에게, 이 마음에게, 조금 더 친절해도 괜찮지 않을까.

여섯 번째를 앞두고 있는 나에게.

무섭지 않은 척 안 해도 된다.

씩씩하지 않아도 된다.


한 달 후의 나는 또 수술실 천장을 보겠지.

그리고 또 깨어나겠지.

여섯 번 다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 오늘은 그냥, 따뜻한 것 한 잔 마시면서, 창밖 바람이나 보자. 아직 오지 않은 내일보다, 지금 이 순간이 훨씬 더 내 것이니까.

— 여섯 번째 수술을 한 달 앞둔 날, 나에게



남은 한 달, 자신에게 가장 다정한 사람이 되어 보려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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