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수술날짜를 받고, 오늘을 사는 것에 대해
6번째 수술날짜를 받고, 오늘을 사는 것에 대해
오늘 아침 커피를 마셨다.
수술 날짜가 잡혀 있다는 걸 알면서, 그래도 커피를 마셨다.
창가에 앉아서 골목을 내다봤다. 바람이 불었다.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별거 아닌 풍경인데, 오늘따라 오래 들여다봤다.
이상하게 요즘은 그런 것들이 눈에 잘 들어온다.
원래 보이던 것들인데, 더 또렷하게 보인다. 수술을 앞두면 그렇다. 몸이 긴장을 알고 있으니까.
눈이 더 열리고, 귀가 더 열린다. 지금 이 순간이 더 선명해진다.
무섭냐고 하면, 무섭다.
숨기고 싶지 않다.
괜찮은 척 하기엔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수술 전날 밤이 어떤지, 새벽 네 시에 눈이 떠지면 어떤 생각들이 지나가는지.
알면서도 또 그 밤을 맞이해야 한다는 게, 솔직히 쉽지 않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이 시간이.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은 이 시간이.
오늘 하루는 온전히 내 것이라는 게 느껴지는 이 시간이.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까, 역설적으로 그전까지는 더 자유롭다.
오늘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오래전에 자주 듣던 노래인데, 오랜만에 틀었더니 그때 기억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쁜 기억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살아온 시간이었다. 그게 내 안에 다 있구나 싶었다. 아무도 가져갈 수 없는 것들이.
혼자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수술 날도 혼자 들어가고, 깨어나도 처음엔 혼자일 것이다.
근데 이게 예전처럼 쓸쓸하기만 하지는 않다.
혼자라는 게 외롭다는 뜻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나 자신이 나한테 꽤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다루는지, 내가 나한테 어떤 말을 하는지. 그게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나한테 너무 모질었다. 왜 이렇게밖에 못 하냐고, 왜 이렇게 됐냐고. 근데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오늘 하루 잘 버텼다, 밥 먹었다, 커피 맛있었다. 그걸로 됐다고 말해준다.
그 작은 말이, 생각보다 많은 걸 붙잡아준다.
아직은 달다는 말이 내 안에서 올라왔을 때, 처음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나 싶었다.
달다니. 이 상황에서.
근데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완전히 달콤한 게 아니다.
쓴맛도 분명히 있다.
무섭고, 지치고, 때로는 왜 나냐는 생각도 든다.
그 감정들을 없애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과 함께, 동시에, 오늘 아침 커피가 맛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바람이 좋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지금 여기 앉아서 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사실들이 나를 붙잡아준다. 무너지지 않게.
수술 날짜까지 나는 매일 이렇게 살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고, 커피를 마시고, 창밖을 보고, 좋아하는 것들을 챙긴다.
미리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미리 겁먹는 시간이 아깝다. 지금 이 하루가 더 소중하다.
오십 살이다.
많이 살았다. 그리고 아직 살고 싶다.
그 마음이 지금 제일 선명하다.
수술이 무서운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게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고, 또 앞으로도 데려갈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 하루, 아직은 달다.
내일도, 수술 전날 밤도, 수술이 끝난 다음 날 아침도, 그 달콤함이 조금씩은 남아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으면서 오늘을 산다.
오늘도 살아남은 나에게. 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