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킬로미터, 혼자

가장 혼자였던 날, 나는 가장 단단해졌다

by 송하루

가장 혼자였던 날, 나는 가장 단단해졌다

어떤 기억은 몸이 먼저 안다.

핸들을 잡은 두 손이 기억한다.

고속도로 위, 아무도 없는 조수석, 창밖으로 쏜살같이 지나가던 가로등 불빛들.

그날 나는 수술 일주일을 앞두고,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은 날 — 혼자 350킬로미터를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다。。이혼은 했지만 난 수술은 받아야 했다.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아마 울었을 것이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울면 안 됐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그게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더 이상 힘들어서 못 살겠다"

8년이었다.

나는 8년 동안 암과 싸웠다.

항암제가 몸속을 훑고 지나가는 동안 머리카락이 빠졌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고, 새벽마다 통증으로 이불을 쥐어뜯었다.

그 옆에 남편이 있었다.

처음엔 그도 손을 잡아줬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도 수명이 있는 걸까.

다섯 번째 수술을 앞두고, 그는 결국 말했다. "나도 너무 힘들어."

원망했다.

당연히 원망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지친 뒷모습이 이해가 됐다.

그도 지쳐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나에게는 용서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도장을 찍었다. 수술 일주일 전에.

혼자, 350킬로미터


브런치13일.png

이혼 도장을 찍고 나서, 일주일뒤 나는 차에 올라탔다.

짐도 없었다. 배웅해줄 사람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목적지까지 350킬로미터"라고 말할 때,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갈 수 있을까. 몸은 이미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마음은 방금 이혼을 했다. 하지만 나는 시동을 걸었다. 그것밖에 할 수 없었으니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눈물보다 먼저 드는 감정은 고요함이었다.

오히려 혼자가 된 그 순간, 아무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 이상하게 마음이 단단해졌다.

그 350킬로미터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가장 고요한 길이었다.

수술 3일 뒤, 다시 핸들을 잡다

개복 수술이었다. 배를 열고, 스테이플러로 봉합하는 수술. 의사는 충분히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몸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수술 3일째 되던 날 아침, 나는 혼자 퇴원했다.

스테이플러가 그대로 박혀 있는 채로. 5시간 거리를 — 7시간에 걸쳐 — 혼자 운전했다.

중간에 휴게소에 두 번 섰다. 차에서 내릴 때마다 배에서 통증이 왔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다. 창백한 얼굴, 구부정한 허리. 그래도 나는 다시 차에 탔다.

"괜찮아?"라고 물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스스로 대답했다. "가야지. 갈 수 있어."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차 안에서 한참을 그냥 앉아 있었다.

울지도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그냥 — 해냈다는 감각만이 온몸에 조용히 번져왔다.

혼자서도, 살아있었다

이혼 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6개월마다 재발하던 암세포가 멈췄다. 2년이 지났다.

나는 처음으로 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었다.

주말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었다. 아프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었다.

아픈 몸으로 텅 빈 집이 처음엔 무서웠지만, 나중엔 그 고요함이 내 것이 됐다.

혼자라는 것이 결핍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되는 시간이라는 걸 — 나는 350킬로미터를 달리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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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제, 나는 여섯 번째 수술 날짜를 받았다.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많은 감정이 스쳐갔다.

억울하고, 두렵고, 지치고.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문득 잊어가고 있던 다섯번째 수술때를 생각했다。

나는 이미 350킬로미터를 혼자 달렸다.

수술 3일 만에 스테이플러를 달고 운전대를 잡았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도 무너지지 않았다.

5번의 수술을 이겨냈다.

그렇다면 여섯 번째도 — 내가 해낼 수 있다는 걸,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불쌍해서라도, 억울해서라도, 보란 듯이 더 잘 살고 싶어서라도.

이번에도 이를 악물고 돌아올 것이다.

수술실에서, 회복실에서, 그리고 다시 내 집으로 — 이번엔 조금 더 씩씩하게.

— 50살, 혼자지만 괜찮은 여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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