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빨간 독약이 혈관을 타고 흐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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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나는 처음엔 의심 없이 믿었다.
항암제가 들어오던 첫날, 링거병 안의 빨간 액체를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게 나를 살릴 것이다. 저 붉은 것이 암세포를 죽이고, 나는 다시 건강해질 것이다. 그 믿음은 의사가 전신보호복을 입고 들어서는 순간 처음으로 흔들렸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덮은 그 복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액체는 사람이 맨손으로 다뤄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 그것이 내 혈관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항암제 들어갑니다. 통증이 있으면 참지 말고 바로 말씀하세요. 참으면 혈관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안내가 아니라 경고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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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삼십 분은 괜찮았다.
생각보다 견딜 만하네. 그런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자 상황은 급격히 바뀌었다. 온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열이 치솟았다. 입안이 헐기 시작했고, 목은 불에 그을린 것처럼 타들어 갔다. 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 메스꺼움이 밀려왔다. 세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변기를 붙들고 몸을 구부린 채 토했다. 위 속에 남은 것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멈출 수 없었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데도 구역질은 계속됐다. 소변마저 붉게 변해 있었다.
몸속 어딘가가 무너지고 있다는 감각이 분명히 느껴졌다. 살리기 위한 약이 나를 이렇게 부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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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후 일주일이 지나자 또 다른 변화가 시작됐다.
베개 위에 머리카락이 보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다음 날 아침엔 더 많았다. 샤워 후 바닥에 뭉친 머리카락을 보며 나는 이것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손톱은 점점 검게 변했고, 손끝과 발끝의 감각이 흐려졌다. 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속이 뒤집혔고, 물조차 삼키기 힘들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머리카락은 더 이상 빠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한 움큼씩 잡혀 나왔다. 침대와 바닥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뒤덮였다. 미용실 의자에 앉아 말했다.
"다 밀어주세요."
"네? 왜요?"
"항암 중입니다."
미용사는 더 묻지 않았다. 바리캉이 켜졌다. 울면 안 돼, 여기서 울면 안 돼.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반쯤 밀린 내 모습을 거울에서 마주한 순간,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미용사는 손을 멈추었다.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날 잘려나간 것은 머리카락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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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차례가 끝나면 삼 주의 휴식이 주어졌고, 그 뒤 다시 시작됐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여섯 번을 견뎌냈을 때 나는 이제 끝났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일 년 후 암은 다시 나타났고, 의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다시 항암을 해야 합니다." 나는 다시 여섯 번을 시작했다. 두 번째 항암은 처음보다 더 잔인했다. 이미 망가진 몸은 회복이 느렸고, 구토는 더 잦았으며, 통증은 더 깊게 남았다. 그렇게 열두 번의 항암이 내 몸을 지나갔다.
항암실 의자에 앉아 링거를 맞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이름도, 직업도, 성격도 사라지고 번호와 차트와 수치만 남은 사람. 아프다고 말하면 돌아오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참으셔야 해요." "원래 다 그래요." "이 정도면 잘 버티시는 편이에요."
그 말들은 위로가 아니었다. 아프다고 말하지 말라는 신호였다. 나는 점점 조용해졌다. 토가 나도 웃었고, 잠을 못 자도 "이 정도는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은 척이 몸에 완전히 배어버린 것이 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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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로 자궁과 난소를 잃은 몸에 항암까지 더해지자, 강제 폐경의 후유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잠을 자는 일이 가장 먼저 무너졌다. 예고 없이 열이 치솟았다가 가라앉고, 땀이 흘러내리는 수준이 아니라 비처럼 떨어졌다. 밤마다 젖은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수면제 없이는 잠들 수 없었고, 수면제를 먹어도 깊이 잠들지 못했다. 아침은 언제나 탈진한 상태로 찾아왔다.
손끝부터 감각이 사라졌다. 차가운 것을 만져도, 뜨거운 것을 만져도 느껴지지 않았다. 걷다가 자주 비틀거렸다. 숟가락을 제대로 쥘 수 없었고, 단추를 채우는 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 손이 내 손 같지 않았다.
엉덩이에는 발진이 생겨 수포가 번졌다. 앉아 있어도 아팠고, 누워 있어도 편하지 않았다. 편한 자세라는 개념이 사라진 채로,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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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수술 한 달 뒤, 외래에서 결과를 들으러 갔다.
교수님은 차분하게 말했다. "재발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항암을 다시 시작합시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싫습니다. 안 하겠습니다."
진료실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항암이 어렵다면 방사선이라도 합시다. 그대로 두면 위험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못 하겠습니다."
교수님은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경과를 지켜봅시다."
사람들은 말했다.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이제 포기한 거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었다. 병원이 정해놓은 일정표대로, 몇 퍼센트의 생존율과 몇 개월의 예후로 계산된 숫자 속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계산 안에서 숨 쉬며 사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 위에서 잠깐 흔들리기도 했다. '다시 해볼까.' '진짜 큰일 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곧 그만두었다. 아직 오지 않은 재발을 오늘로 끌어와 걱정하느라 오늘을 버리는 것이 더 아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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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항암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머리카락이 없고, 손톱이 검게 변했으며, 몸은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었다. 내가 알던 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지금도 소독 알코올 냄새를 맡으면 속이 뒤집힌다. 몸은 기억하고 있다. 지워지지 않는다. 열두 번 열린 항암실 문을 통과한 나는 무너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빨간 독약은 암세포만 죽이지 않았다. 내 몸의 일부도 함께 가져갔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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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중인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한 가지만 말하고 싶다.
아프다고 말해도 된다. 힘들다고 말해도 된다. "원래 다 그래요"라는 말 앞에서 조용해질 필요 없다. 당신의 고통은 비교될 수 없고, 참아야 할 의무도 없다. 이겨내야 한다는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를 당신답게 지나가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이 이미 충분히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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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에서는 두 번 머리카락을 잃은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한다.
첫 번째는 울었고, 두 번째는 울지 않았다.
그 두 번 사이에서 내가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