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 있던 제자가 휴가를 나왔다.
14살의 작고 단단했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군인이 되어 훈훈하고 듬직한 사나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겸손하고 사려 깊은 태도와 깊이에 제자와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고, 저녁을 먹은 후에도 한참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고 가만 생각해 보니 아이는 8년 전 그때도 그랬었던 것 같다.
담임으로서 그런 아이를 참 많이 아꼈었는데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아니! 그때보다 한층 더 성숙하고 멋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뭔가 잘하고 있을 때마다 꼭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 뵙게 되면 꼭 선생님께 저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고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대화가 이어지는 내내 훌쩍 자란 아이가 보여주는 면면에 그저 놀라고 감동했다.
그럴 때면 가끔 진심으로 궁금해지곤 한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까?'
담임을 하던 당시에는 아이의 부모님을 한 번도 뵌 적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이던 아이는 중국에 계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고모댁에 살고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축구선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했고, 어려움 역시 혼자 감당했다.
마음 한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는, 아직은 어리기만 하던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이 있었지만 걱정과 달리 너무도 씩씩하고 바르게 생활하는 아이가 내심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했었다.
지금은 중국에 계시던 부모님도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두 한 집에 모여 살고 있다 했다.
한창 사춘기 때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던 시절이 오히려 아이에게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더하기라도 한 걸까?
눈을 반짝이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이의 눈빛 속에 부모님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가득 담겨 있었다.
피치 못할 물리적 부재와 공백이 반드시 정서적 결핍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부족함과 모자람이 반드시 도태와 궁핍을 초래하는 것 또한 아닐 것이다.
부모 된 이로 우린 늘 부족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걱정하지만...
어쩌면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그들을 가장 완벽하게 양육해 줄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부모만은 아닐 것이다.
풍족하고 탄탄한 배경 속에서만 아이들이 흔들림 없이 자라는 건 결코 아닐 것이다.
내 아이, 그리고 수많은 다른 부모님들과 그들의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알게 된 점이 하나 있다.
'부모님이 누구실까?' 궁금하리만치 잘 자란 그 아이들 뒤에 항상 우리가 상상하는 대단한 부모님이 계셨던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부모의 경제력과 정보력이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시대에도 내가 아는 수많은 상위 1%(성적이든 성품이든)의 아이들은 여전히 부모의 뒤가 아니라 부모의 앞에서 걸어가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부모님들 역시 때론 완벽함보다는 빈틈 많은 존재, 아이보다 '앞선 존재'가 아닌 '뒤선 존재'에 가까웠다.
부모의 빈틈은 아이에게 숨 쉴 여백이 되어준다.
부모의 빈틈은 그 자체로 따뜻한 공간이 되어준다.
아이는 그 속에서 비로소 위로받을 수 있고, 그 힘으로 누군가를 위로할 힘도 키울 수 있다.
부모의 모자란 곳을 채워주려는 노력과 의지 속에서 아이의 꿈이 자라고, 경험이 쌓이며,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도 한다.
'내가 걸어갈 길을, 내가 해결할 문제를, 내가 경험하는 모든 세계를' 모조리 알고 있는 부모 앞에서 아이들은 때로 입을 열 기회를 놓친 채 침묵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은 부모 덕분에 아이는 여유와 성장을 위한 기회를 얻고, 그 속에서 만족감과 자존감을 마음껏 쌓게 되는 셈이다.
모자라되 마음껏 숨 쉴 수 있는 미학의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기죽지 않고, 자신이 가진 빛을 잃지 않게 됨을 이미 그들의 부모님들은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내 아이를 보면서도 느낀다.
나의 부족한 바로 그 지점에 아이는 조심스레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쌓아가고 있음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곳에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선물 같은 결과요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나의 인내가 허락하지 않고, 나의 조급함이 일을 그르치는 순간은 불행히도 늘 있어 왔지만!
어쩌면 부모의 능력과 역량이 뛰어날수록 아이의 자존감을 지키기란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 스스로 세운 기준과 한계가 자신의 깜냥과 범위를 벗어나게 되는 경우 자칫 그 잣대가 스스로를 공격하는 빌미가 되곤 한다.
아이 앞에 반드시 똑똑한 부모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존재해야 할 자리에 아이보다 먼저 서 있는 부모로 인해 아이가 자신의 설 자리를 잃지 않도록!
정말 똑똑한 부모라면 아이 앞에 '똑똑한 체하지 않아야 하는 순간'을 간절히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 아이는 부모보다 참~ 괜찮은 '과분한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