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는 한,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by 라온제나

입학할 때만 해도 또래보다 좀 큰 편이었으나 초등 고학년이 되자 오히려 작은 편에 속하게 된 아이는 이것이 못내 속상하고 고민이 되었던 모양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자 아이의 성호르몬이 이미 나오기 시작했고, 그럴 경우 상대적으로 성장판이 일찍 닫혀 키 성장이 생각보다 빨리 멈출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일명 성조숙증)

아이의 예상 키를 묻자 의사선생님은 159cm 정도라고 하셨다.

엄마보다 키가 작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 역시 아쉽고 속상했지만 이 사실을 굳이 아이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의 현재 키는 166cm다.

본인의 예상 키를 이미 훌쩍 뛰어넘은 상태다.

그리고 그 키는 지금도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이다.

아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의 키가 159cm까지만 자랄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그런 얘길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리도 만무하지 않은가!


어릴 적 우리 동네에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오빠가 한 명 있었다.

훤칠한 외모에 항상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고 우리 집앞을 지나 근처 초등학교로 출근하던 모습을 볼 때면 엄마는 늘 감탄 어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그 모습이 한편 부러우셨던지 종종 내게


"너도 나중에 저렇게 정장 입고 학교에 출근하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렇게 내 꿈은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었고, 그 꿈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사범대에 진학했고, 임용고시를 거쳐 중등 교사가 되었다.

아마도 엄마가 바라보던 세상 속에서, 그리고 내가 처음 마주한 세계 속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존재가 바로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끼리 사슬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서커스단 등에서는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새끼 때부터 말뚝에 쇠사슬로 발을 묶어 놓는다. 처음 발이 묶인 어린 코끼리는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차츰 자신이 절대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얌전해진다.

그러고 나면 쇠사슬이 없어도, 쇠사슬을 끊어낼 만큼 몸집이 커져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스스로 말뚝 주변을 자신의 한계로 설정하고 더 이상 그곳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과거의 무력했던 경험이 지금의 상황을 벗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1970년대, 오랫동안 역도계에서는 '500파운드(227kg)'를 넘는 벤치프레스는 인간의 한계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바실리 알렉세예프'라는 선수가 처음으로 이 무게를 성공적으로 들어올린 이후 신기하게도 그 해에만 6명의 선수가 같은 무게를 들어올렸다고 한다.

'500파운드'라는 무게가 진짜 인간의 한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것이 한계라는 잘못된 믿음이 바로 한계였을 뿐!

안 된다고 믿었던 '마음의 사슬'이 풀린 순간, 실현 가능하다는 인식 그 하나만으로도 불가능할 것 같은 무게가 충분히 해볼만한 무게로 바뀌었던 것이다.

'신체의 한계'가 아니라 '믿음의 한계'가 더 큰 장벽이었던 셈이다.


만약 그때 엄마가, 그리고 내가 다른 누군가를 먼저 만났더라면, 내 꿈도 더 넓고 다르게 펼쳐졌을까?

그 가능성을 애써 떠올려 보지만, 결국 그 모든 상상조차도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온다.

세상은 넓었지만, 내가 보았던 세상은 오로지 한 방향으로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내 ‘꿈’은 순하고 얌전하게 길들여졌는지 모른다.

그 꿈은 분명 소중했고, 누군가에겐 부러운 일이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내 꿈의 전부이자, 동시에 나의 한계였는지 모르겠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들과의 조우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들을 통해 내 삶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상상한 적 없는 또 다른 세계를 한 번쯤 넘보며 자신이 갇힌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보자.

어차피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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