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고 있노라면 텅빈 집은 고요하기만 했다.
숙제를 끝내고 책을 읽으며 혼자 생각에 잠기기엔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리워지곤 한다.
그 시간 속에 담겨 있던 내가 그립기도, 생각만 해도 코끝을 스치는 듯한 그 시절의 내음이 그립기도 한 묘하고 아릿한 그리움이다.
맥락도 본질도 없이 던져진 수많은 고민과 의문, 그 속에서 하염없이 길을 잃고 헤매도 좋았다.
끝없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도 괜찮았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복잡하던 머릿속이 명징해지는 순간이 분명 올테니!
'나'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줄수록, 스스로에 대해 더 깊이 공감했고 이해의 폭은 넓어졌다.
'나'를 이해하려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스스로가 특별하고도 꽤 괜찮은 사람이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살아갈수록 내게 더없이 귀하고 간절해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간'이다.
바쁘고 힘들수록 잠깐 멈춰 찬찬히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간절해진다.
시간을 놓치는 것이 나를 놓치는 것만 같아 마음이 보탄다.
누구인지도, 무엇인지도, 어디인지도 모른 채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저 살아지는대로 나를 내버려둘 수도 없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곳을 들여다보며 다독여줄 수 있는 여유와 용기는 어쩌면,
자신이 허락한 그 시간의 깊이와 공간 만큼일 것이다.
이유도 없이 바쁘고, 목적도 없이 흩어지는 삶 속에서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시간을 얻고자 점점 더 욕심을 부려본다.
그 시간이 넉넉해질수록 삶이 정갈해지고 명쾌해짐을 느낀다.
'필요한 것'이 명확해지다 보면 '불필요한 것'에 욕심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어주고 순수한 정수(精髓)로 채우는 순간, 삶에 그다지 많은 것을 채워야 온전해지는 것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말하는 '미니멀리즘의 진짜 가치와 핵심'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마음의 공간을 비우지 못하면 좋은 것이 들어와 머물 수 없다.(구본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