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방학인데도 병원에 다니느라 여유가 없단다.
늦은 나이에 낳은 어린 셋째까지 챙기느라 얼마나 바쁘고 힘들지 짐작이 간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 아파서 병원만 다니다가 내 인생이 끝날 것 같아 너무 우울해."
언젠가 내게도 불현듯 엄습하던 두려움이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그 속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 한층 더 마음이 짠했다.
격무로 힘들면서도 흔한 푸념 한 번 한 적 없던 남편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책임져야 할 부분이 많아지는 자신의 위치와, 업무상 관계지어야 하는 사람 사이의 문제로 힘들어진 최근의 상황 때문일까?
요즘은 가끔 내게 얘기한다.
"얼른 은퇴해서 둘이 같이 여유롭게 차박하며 여행 다니고 싶다."
지금 주어진 삶이 힘들고 버거울수록 더 간절해지는 아련하고도 눈물겨운 그 언젠가의 나날들!
누군가에겐 굳이 '은퇴'를 거론하지 않아도 일상처럼 즐기는 삶일 수 있을 테지만, 또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 끝에야 도달할 수 있는 신기루 같은 행복의 정수(精髓)라니...
삶을 인내한 끝에 어렵게 얻어낸 행복만이 진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반드시 고난 속에 얻은 열매여야 달디 단 것은 아닐 것이요,
비록 달지 않을지라도 그 열매는 그 자체로 분명 값진 의미를 지닐 것이다.
행복은 전리품이 아니다.
잔잔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의 눈빛 속에도,
누군가를 향한 다정하고 따뜻한 손길 속에도,
시시껄렁한 농담에 마음껏 웃어줄 수 있는 천진함 속에도,
행복은 무한히 넘쳐 흐르고 있다.
적어도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지금을 버티고 감내한다는 착각은 하지 않으리라!
"애쓰고 치열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옥씨부인전)
가족과의 일상은 늘 내게 너무 소중하고, 남편과의 하루하루는 즐겁고도 귀하다.
매일매일 쌓여가는 그 시간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행복을 놓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오늘도 사랑하는 이와 아침을 먹고,
가벼운 나들이를 즐기며,
함께 책을 읽고,
좋아하는 차를 마시며,
서로에게 가장 따뜻한 눈빛을 내어준다.
인생의 우선 순위가 무엇인지 잊지 않는 한,
비록 '애쓰고 치열했노라' 치하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행복한 일상은 공기처럼 내 삶을 채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