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넷플릭스 영화 <대홍수>를 보고
처음 이 영화를 틀었을 때, 솔직히 기대했다.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
물에 잠긴 고층 아파트, 붕괴 직전의 일상, 아이를 안고 탈출하는 엄마.
예고편이 보여준 이미지는 분명히 ‘스케일’과 ‘장르적 쾌감’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초반 10분은 인상적이다.
물이 차오르는 속도, 아파트라는 폐쇄 공간, 위로만 향할 수밖에 없는 동선은 꽤 설계가 잘 되어 있다.
김병우 감독이 밀폐된 공간을 활용해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 능하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수중 촬영 역시 국내 영화 기준으로는 확실히 눈에 띄는 완성도다.
이 지점까지는 “이 영화, 생각보다 괜찮다”는 기대가 생긴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재난을 밀어내고 전혀 다른 질문을 꺼내 든다.
인류는 이미 멸망했고, 우리가 보고 있는 이 탈출극은 실제가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라는 설정.
아이는 아이가 아니고, 엄마 역시 실험의 일부다.
이야기는 재난에서 SF로, 다시 감정 실험 드라마로 급격히 방향을 튼다.
이 전환이 나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질문 자체는 꽤 흥미롭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기술로 몸은 만들 수 있어도, 감정은 복제할 수 있는가.
특히 모성애처럼 본능적이면서도 복합적인 감정은 과연 데이터화가 가능한가. 영화는 이 질문을 ‘2만 번이 넘는 반복된 실패’라는 설정으로 밀어붙인다.
이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한 편 안에 담으려 한다.
재난 영화의 긴장감, AI와 신인류라는 SF 설정, 타임루프 구조, 그리고 모성애라는 정서적 중심축까지.
어느 하나를 깊이 파고들기에는 러닝타임이 부족하고, 결과적으로 모든 요소가 스쳐 지나간다.
관객은 이해는 하지만 충분히 느끼지는 못한다.
특히 감정의 누적이 아쉽다.
2만 번의 실패가 있었다면, 그 절망과 변화가 관객에게도 체감되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숫자를 보여주는 데 그칠 뿐, 그 시간의 무게를 충분히 체화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마지막 성공의 순간 역시 개념적으로는 이해되지만, 감정적으로 폭발하지는 않는다.
김다미의 연기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고, 수중 장면에서의 몰입도도 뛰어나다.
무엇보다 한국 영화에서 이런 스케일의 SF를 정면으로 시도했다는 점 자체는 의미가 있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이 시도는 기록될 필요가 있다.
처음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혹평이 많았던 것처럼,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충분히 괜찮은 영화다.
<대홍수>는 재난 영화, 모성애를 느끼는 영화보다는 질문형 영화에 가깝다.
볼거리를 기대하면 실망할 수 있고, 생각할 거리를 원한다면 흥미로울 수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영화가 던진 질문—감정은 학습될 수 있는가—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꽤 오래 남는다.
아마도 이 영화는 호불호보다,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묻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