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 정의를 ‘다시 살아야만’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을까
정의는 늘 늦게 도착한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상상한다.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때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2026년 1월, MBC 금토드라마 〈판사 이한영〉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작품은 회귀라는 익숙한 장치를 빌리지만, 그 질문만큼은 낯설고 무겁다.
정의는 왜 늘 사후적으로만 가능해지는가.
〈판사 이한영〉은 이해날 작가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법조 전문물 장르에서 꾸준히 신뢰를 쌓아온 작가의 작품답게, 이 이야기는 이미 대중적 검증을 거쳤다.
웹소설과 웹툰을 합산해 1억 뷰를 돌파했다는 기록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이 서사가 얼마나 많은 독자에게 설득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원작의 핵심은 명확하다.
정의로운 판사가 재벌과 권력의 카르텔에 맞섰다가 철저히 제거되는 이야기다.
문제는 그 배신이 언제나 외부에서만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료와 가족, 그리고 시스템 자체가 한 개인을 고립시킨다.
정의는 옳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드라마판 〈판사 이한영〉이 흥미로운 이유는 주인공의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한영은 처음부터 강직한 판사가 아니다.
그는 거대 로펌의 사위로서 청탁 재판을 일삼던, 권력에 기대 살아온 인물이다.
이 설정 변화는 드라마의 질문을 바꾼다.
이 작품은
“정의로운 사람은 왜 무너지는가”보다,
“타락한 사람은 다시 선택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는 훨씬 불편한 질문이다.
정의가 순수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잘못된 선택을 해온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는 주어질 수 있는가.
드라마는 이 질문을 회귀라는 장치로 밀어붙인다.
드라마 속 이한영은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이 시간 설정은 중요하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과거.
지금의 선택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되짚을 수 있는 거리다.
그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
누가 배신할지, 어떤 판결이 어떤 비극을 낳는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알고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알고 나서도 침묵할 것인가.
이한영 앞에 놓인 갈등은 거창하지 않다. 대신 현실적이다.
정의는 언제나 결단의 순간이 아니라, 망설임의 순간에서 무너진다.
〈판사 이한영〉이 오래 남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드라마는 통쾌한 판결보다, 우리가 외면해 왔던 질문을 남긴다.
왜 우리는 정의를 현실에서 완성하지 못했는가.
그래서 왜 드라마 속 회귀에 기대를 거는가.
아마도 그 이유는 단순하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선택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 속 인물에게 대신 물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