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감정이 예술이 되기까지
요즘 나는 조울 증상을 겪고 있다. 다행히도 스스로 그런 상태라는 걸 인지하고 있고, 그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조울증은 흔히 알고 있는 우울증과는 다르다. 우울증은 지속적인 불안과 침잠 속에 머무르지만, 조울증은 감정의 롤러코스터 같다.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는 ‘조증(躁症)’과, 반대로 깊은 무기력과 우울에 빠지는 ‘울증(鬱症)’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
만약 인간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을 100%라고 가정한다면, 조증 상태에서는 이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붓고, 그 결과 울증으로 급격히 소진된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증 상태의 나는 마치 무한한 창의력과 에너지로 충만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생산성과 활기는 일종의 착각일 수 있다. 이후 찾아오는 무기력은 ‘당연한 결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쉽다.
바로 이 점이 조울증의 무서운 지점이다. 스스로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정상 상태’라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나는 가족의 죽음을 경험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온다는, 그러나 막상 마주하면 감당하기 힘든 그것.
내 동생은 마흔아홉이라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썼지만, ‘여전히 괜찮지 않은 나’와 마주할 때마다 일상은 무너졌다.
‘누구나 겪는 일이야. 다 지나갈 거야.’
애써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상실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
가족의 죽음은 어떤 상실보다 깊고 견디기 어렵다.
나는 이 고통을 이겨내고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찾아 나섰다. <괜찮아지는 법>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했고, 죽음학 책을 읽으며 동생의 죽음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동생이 사고를 당했던 그 순간을 수없이 머릿속에서 재현해보며,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했던 밤들도 있었다.
#감정에세이 #예술과치유 #고통의기록 #나는괜찮지않다 #예술은치유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한 기자에게 연락을 받고 동생이 사고를 당했던 그 장소를 다시 찾았다. 고속도로는 아니었지만, 차들이 고속도로처럼 질주하는 그 도로는 그 자체로 공포였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들의 속도가 그대로 온몸으로 전해졌다. 함께 걷던 젊은 여성 기자는 수차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동시에 그녀에게 의지하는 이중적인 감정 속에 있었다.
불과 몇 달 전, 이 도로 위에서 차갑게 내던져졌을 동생을 생각하면 한 발짝 내딛는 것조차 나에게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나는 걸어야 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스스로에게 끝없이 주문을 걸며, 나는 아슬아슬한 속도감이 감도는 그 도로 위를 걸었다. 그 길은 마치 선택의 여지도 없이 전진해야만 하는 위험한 인생의 메타포 같았다.
한참을 걷다, 나는 운동화 한 짝을 발견했다. 처음엔 동생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평소 운동화를 신은 모습을 자주 보지 못했기에 당연히 아닐 거라 여겼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알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막내 동생에게 사진을 찍어서 보냈고, 흙먼지로 뿌옇게 변해버린 그 운동화가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더니, 뒤이어 막내동생은 그 운동화는 형의 것이 맞고, 다름아닌 막내동생이 형에게 선물해 준 신발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날 아침, 아무 일 없을 줄 알았던 평범한 아침에 동생이 마지막으로 신었을 그 신발.
세상과 작별하며 남긴 유일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마치, 그 운동화가 동생의 마지막 흔적이자 나에게 보내는 조용한 인사 같았다.
그 도로를 다녀온 이후로 난 며칠동안 아팠다. 몸도 마음도 모두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