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자의 몫

내면의 힘을 발견하는 여정

by 이로현

동생의 사망을 시작으로,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의 암투병까지, 모든 것을 겪으며 나의 일상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성격상 늘 약간의 비상금이 있어야 마음이 놓이던 나는 그 불안에서 어느새 조금은 벗어나 있었다. 예전의 나는 늘 나를 지켜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안고 살았다. 나를 보호해주는 존재보다, 내가 지켜야 할 가족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삶에서 비상금은 단순한 돈이 아닌 나를 지켜주는 힘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만약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다면 후회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 안에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떠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이 묻는 두 가지 질문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질문은 “너는 행복하게, 후회 없이 살다 왔느냐?”이고, 두 번째 질문은 “너는 누군가에게 행복을 주는 삶을 살았느냐?”라고 한다.

어느 날, 프랑스에 사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다가 나는 이 질문을 던졌다. 아들은 첫 번째 질문엔 그럭저럭 괜찮다고 답했지만, 두 번째 질문엔 망설이며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나는 말했다.

“아들아,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자신 있게 예스라고 말해도 돼. 왜냐하면 엄마는 네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거든. 너는 세상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엄마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존재야.”

그 말을 들은 아들은 잠시 조잘대던 입을 다물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

가족의 상실 이후, 나는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해버리는 습관이 생겼다.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면 바로 선물을 하고, 밥 한 끼 사주고 싶은 사람이 떠오르면 망설이지 않고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마음속으로만 고마워하는 것은 오직 나만 아는 일일 뿐, 상대방은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기쁨이었는지를 모른 채 살아갈 수도 있다. “당신은 참 소중한 사람이에요.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표현은, 그 어떤 값비싼 선물보다 더 크고 깊은 선물이 된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 사람의 감정을 읽지 못하고, 위로할 줄도 모른다면 어떻게 예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매일 회개한다. 어릴 적, 여자아이란 이유로 늘 뒤로 밀려나야 했던 초라한 내 모습이 싫어 괜히 이유도 없이 동네 착한 남자아이들을 때려 눕히곤 했던, 열두 살의 깡패 같던 나의 상처투성이 시절을. 가난한 유학생활 중, 내 한 끼조차 아껴야 했기에 나보다 더 힘들었던 친구들에게 밥 한 끼 사주지 못했던 그 날들을. 그리고 내가 의식하지 못한 수많은 순간에, 혹시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그 모든 죄들에 대해 나는 회개하고, 다짐한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무엇이든 주고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인간의 내면에는 놀랍도록 깊고 강력한 힘이 숨어 있다. 그 힘은 마치 깊은 바닷속에 감춰진 보물처럼,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존재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며 살아가지만, 진정한 힘은 언제나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타인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작은 선물을 했다.

“당신으로 인해 내가 힘들었던 그 순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요. 이미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남겨진 자의 몫’이란, 떠나간 이들로 인해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내 안의 질문들과 소통하고, 내가 후회할지도 모를 일들을 미리 생각해보며 오늘을 더 단단하게 채워가는 것. 아프지만, 아픈 채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예요.

이겨내려 안간힘 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바라봐주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보세요.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건네는 그 위로가 때로는 가장 정확한 답이 될 수 있으니까요. 굳이 행복하냐고 묻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이대로면 충분해요.

어머니가 입원해 계신 병실, 바로 옆 침대의 할머니는 내가 오기를 기다리신다. 의료진들에게 자주 가슴이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호소하시던 그분께 조용히 손을 잡고 말했다.

“너무 아플 때는 의료진을 부르기 전에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세요. 진통제는 결국 몸을 더 해칠 수도 있어요. 대신 손을 가슴에 얹고, 성모님께 믿고 기도하시고 도와달라고 하세요.(그 분의 신앙은 나처럼 카톨릭이다.) 그리고 ‘괜찮아, 괜찮아’ 하며 자신을 다독여보세요.”

그 이후 할머니는 그 말을 잊지 않았고, 나에게 감사하다고 했고, 실제로 의료진들에게 통증 호소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했다.

마음의 치유는, 결국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내면에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단지 그 힘을 발견하고 인정할 용기와 인내만이 필요할 뿐이다. 자신을 믿고, 존중하며, 사랑하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가장 값진 여행이 될 것이다. 내면의 힘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 길 위에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저도 함께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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