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술과 공간의 기억 I <카페 드 플로어>

Cafe de Flore

by 이로현

예술과 공간의 기억1.

Café de Flore…


파리 6구, 생제르맹(Saint-Germain) 지역에 위치한 카페 드 플로르(Café de Flore).

프랑스 제3공화국 시절(1870–1940),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넘은 1887년경에 문을 열었다.

이 카페는 19세기 말, 샤를 모라스(Charles Maurras)가 2층에 머물며 책을 집필하고 출간한 것이 화제가 되며, 1899년을 기점으로 Café de Flore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과 루이 아라고(Louis Aragon) 등에 의해 ‘쉬헤알리스트(surréaliste)’라는 단어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다. 문인들과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차츰 카페 플로르는 예술가들의 담화 장소로 자리를 잡아갔다.


조르주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로베르 데스노스(Robert Desnos),

레옹 폴 파르그(Léon-Paul Fargue), 레몽 크노(Raymond Queneau), 미셸 레리(Michel Leiris), 드랭(Derain), 쟈코메티 (Giacometti), 자드킨(Zadkine), 피카소(Picasso)… 이름만 들어도 벅찬 작가들과 예술가들이 밤을 새워 이야기를 꽃피우고,

때론 술병을 던지며 싸우기도 했던 이곳은 그야말로 시대의 예술이 태어난 장소로 기록되고 있다.


2010년에는 Café de Flore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제작되었고, 1994년부터는 ‘플로르 문학상(Prix de Flore)’을 제정하여 매해 한 작품을 선정해 상을 수여하고 있기도 하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플로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Nous nous y installâmes complètement : de neuf heures du matin à midi, nous y travaillions, nous allions déjeuner, à deux heures nous y revenions et nous causions alors avec des amis que nous rencontrions jusqu’à huit heures. Après dîner, nous recevions les gens à qui nous avions donné rendez-vous. Cela peut vous sembler bizarre, mais nous étions au Flore chez nous. »


“우리는 완전히 그곳에 자리를 잡았죠.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는 거기서 일했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오후 2시에 다시 돌아와 친구들과 밤 8시까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저녁을 먹은 뒤에는 약속한 사람들을 맞이했죠.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플로르에 있으면 꼭 집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수많은 예술적 꽃을 피워냈던 카페 드 플로르는 오늘날에도 외형은 남아 있지만, 그 구석구석 어디에서도 옛날의 낭만과 예술의 향수는 느껴지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 탓인지, 지나치게 시크해져버린 지금의 플로르는 크림이 풍성히 들어간 커피 한 잔조차 파리지앵들의 가벼운 발걸음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이제는“유명하니까 한두 번쯤 가보는 곳”으로 전락해, 관광객들이나 고고한 노년의 인물들만이 잠시 들르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말이에요.

우리가 Café de Flore를 지날 때면,

어느 추운 겨울날, 손에 입김을 불며

멋진 모자를 쓰고 시가를 문 한 노신사를 상상해 보게 됩니다.


그 노신사는 어쩌면 피카소일지도, 아니면 사르트르, 혹은 조르주 바타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지며 이렇게 말합니다:


“오~~~!!! 역시 파리에 오길 잘했어!

이렇게 파리에 있으니, 그렇게도 유명했던 낯익은 얼굴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도 누릴 수 있다니!”


그 상상의 나래 속에서 따뜻한 크림 커피 한 잔을 주문합니다.


그 노신사는 아마도 비싼 와인은 엄두도 내지 못해 피셰(Pichet)에 담긴 값싼 와인을 몇 병이나 연거푸 시켜 마셨을 지도 모르고, 밤을 새운 뒤, 카페 문이 닫힐 무렵엔 초저녁에 들어왔던 얼굴들이 아닌 또 다른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겠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곳에 있었던 낯익은 얼굴의 주인공이 언제 나갔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 밤은 그렇게 흘러갔을 겁니다.


Café de Flore 안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이제 카페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옵니다.


Bonne nuit à demain!

잘 자요 내일 또 만나요.


(2013년에 쓴 나의 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