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상처를 말하다.

1. 빈센트에게

by 이로현

빈센트,

당신의 그림 앞에서 내가 처음 눈물을 흘린 건 2000년 어느 가을,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갔을 때였어요.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아 미술관 앞에는 여전히 철골 구조물과 흙먼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나는 당신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하나같이 ‘반 고흐’라고 말할 때마다, 마치 그것이 어떤 정해진 정답처럼 느껴져 그 대답이 오히려 지루하고 식상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취향과 개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모두가 ‘반 고흐’를 말하는 그 모범 답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죠. 물론, 그 생각에는 지금도 일부분 동의합니다. 예술은 다양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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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날, 미술관 2층 자화상 시리즈 앞에서 나는 완전히 무너졌어요. 한 점 한 점 자화상을 마주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당신이 거울을 바라보며 자신을 그려낸 그 순간들, 거칠게 일렁이는 붓터치, 얼굴에 스민 그림자,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한 눈빛. 당신은 자신을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리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렇게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있었지요. 희망이란 이름을 가진,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실체 없는 감정을 의지삼아, 끝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만 했던 그 시간 속에서 자화상은 그렇게 늘어났겠지요. 나를 이해하고 싶지만 점점 낯설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서야만 하는, 그 치열한 하루하루를 당신은 붓으로 살아냈던 거예요.

나는 자주 생각합니다. 왜 당신의 하늘은 그렇게도 소용돌이쳤을까. 왜 별은 저렇게나 반짝이며 날카로웠을까. 고요해도 괜찮았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절박하게 그렸을까. 당신의 그림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나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게 됩니다. 세상은 당신을 ‘광기 어린 천재’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고 있어요. 세상이 보지 못한 건 당신의 내면이었을 거예요. 예술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던 마음. 당신은 외로운 사람이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사람이었고,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했다고 말하며 안타까워하지만, 나는 당신이 동생 테오에게 남긴 수백 통의 편지에서 오히려 더 많은 슬픔과 불안을 발견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질까?”라던 당신의 물음, 삶을 붙잡고자 애쓰던 손끝, 붓질을 하며 간신히 버텼을 그 절박한 마음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림을 그렸던 게 아니라, 실은 살고 싶다고... 행복하고 싶다고 외치는 일종의 구조요청과도 같았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짧았지만 저에게도 화가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어요. 오로지 그림과 마주하며 자신에게 묻고, 또 대답하고, 다시 질문하던 고독한 나날들. 아무도 없는 아뜰리에에서, 벽지마저 침묵하던 그 공간에서, 나의 존재가 점점 무너지는 걸 느꼈지요. 나를 버티게 해 줄 단 한 사람만 있었어도, 그 순간들이 덜 외로웠을 텐데. 당신은 그 외로움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사실이, 나를 울립니다.

누구나 가슴아픈 추억 몇 개는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게 바로 인생이라고 하더군요. 울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시간들 말이예요. 그저 침묵 속에 웅크린 채,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갑갑한 시간들 말이예요. 어떤 시선 하나, 어떤 말 한마디에도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나처럼 움츠러들고 말아요. 그래서일까요. 당신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볼 때마다 나는 숨이 막히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사람들은 그 풍경을 단지 그림이라 말하지만, 저는 그 속에서 생의 절규를 봅니다. 당신의 분노, 고독, 삶에 대한 마지막 끈. 그 격렬한 까마귀들의 날개짓은 제 마음속에까지 날아들어 휘몰아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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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통의 날들을 살아낸 당신의 붓끝에서 태어난 작품들이, 수 세기를 지나 오늘의 누군가를 위로하고 있다는 것. 그건 정말 대단한 기적이에요. 당신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 더 인간다워지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살아내고 싶어집니다. 동생 테오가 결국 몇 달 뒤 당신을 따라간 것도, 단지 슬픈 이야기로 끝나지 않아요. 그것은 두 사람의 고독한 연대이자, 서로를 향한 가장 순수한 사랑이었죠.

빈센트, 우리가 예술을 통해 다시 살아가고자 애쓰는 이유는 아마도, 그 절망의 끝에서 누군가를 살려낸 그림을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당신의 붓이 그렇게 나를,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를 토닥이고 있어요.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요. 당신의 삶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단지 너무 앞서 살았던 사람일 뿐이고, 지금 우리는 당신을 통해 조금 더 인간다운 마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고마워요, 빈센트. 당신의 외로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오늘도 누군가의 가슴 속에서 그 까마귀들이 날아오르고 있다는 걸… 나는 이렇게 글을 쓰며, 조용히 속삭여 봅니다. 우린, 살아야 해요. 희망이라는 이름 하나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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