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시대에 드러내지 않는 명품이야기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문화나 문화재가 있다. 이웃의 중국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궁궐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규모를 다투기는 어려워도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스토리에서는 우리나라 또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에펠탑과 루브르가 있는 프랑스도 그렇거니와 아름다운 건물이나 역사는 수없이 많지만, 한국인과 그 정서가 얽힌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한국문화의 강점이 아닐 수 없다.
염색화가 김정화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또한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울 만큼 아름답다. 그녀는 수십 년을 염색에 미쳐 살아오며 얽힌 재미나고 슬프고 때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이따금씩 툭툭 이야기 창고에서 꺼내주신다.
염색이란 단순히 천에 물들이는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는 색깔을 어느 천에 어떻게 어떤 염료로 물들일 것인지를 요량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모든 요건들에 대해 조용히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대충 종이 위에 연필로 끄적거리는 스터디도 아니고, 큰 도서관에 소장된 다양한 책들 속의 기록들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특히 근대 들어 기록문화가 영성해진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열악하다. 염색원료로 쓰이는 식물들을 직접 채취하며 그 식물에 대한 공부가 필요해서 식물도감을 찾아봐도 맹탕인 경우가 많았다.
정확한 자료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서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수소문 끝에 알게 된 것이 북한의 식물도감 영인본이었다. 북한에서 나온 영인본 식물도감에는 그 식물의 계절별 사진과 말렸을 때의 모습, 그리고 그에 따른 화학적 분석과 상황별 반응 및 성분까지 기록해 놓았을 뿐더러 임상실험을 통해 약용 가능 여부 등도 세밀히 연구해 두었다. 그처럼 기초연구분야에서도 철저하게 분석・기록・관리를 해왔으니 현재 화약을 비롯한 무기의 기초재료부터 고성능무기의 생산까지도 철저하게 관리되지 않나 하고, 선생님은 생각하신다.
그렇게 염색을 위해서는 어떤 숭고한 의식처럼 하나하나 몇 년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단계부터 거친다. 먼저, 자연 속에서 바람을 맞고 비를 맞으며 자연 그대로의 온도와 습도에서 자란 튼튼한 식물의 채취가 필요하다. 그리고 산도(Ph)에 따라 흡수되는 염도의 색감 자체가 달라지니, 물이 잘 들도록 하기 위해서는 화학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식초 역시 스스로 제작해야 한다. 적절한 산도를 위해 어떤 식물에는 어떤 과일로 만든 식초가 가장 적절한지 등의 세밀한 작업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단순히 ‘물을 들인다’는 것이 염색이 될 수는 없다. 염색과정은 그처럼 세밀한 과정을 몇 년 전부터 거치며 모든 재료들을 손수 준비하고 여러 환경에도 대비해 와야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는 무엇보다 온 마음과 정신이 그 속에 푹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 몇 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해 온 과정이라도 아차 하는 실수로 단 한 방울의 다른 무언가를 떨어뜨리는 순간 원하던 색깔이 그대로 배어나오지 않는다.
염료뿐 아니라 염료의 색감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천을 찾아내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한데, 그 과정 또한 정말 재미있다. 옛날에는 직접 베틀로 천을 짰기 때문에, 단순한 것 같은 천도 자세히 보면 그 천을 짰던 당시의 상황이 드러나 그것을 상상하며 피식 웃는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는 무엇인고? 베틀을 움직이는 도중에 누군가 베를 짜고 있는 엄마나 할머니에게 무언가 묻거나 말을 시키면, 아주 잠깐 손이 멈추며 머리가 대답을 궁리하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실의 두께가 달라진다. 이처럼 실의 결에 사람의 삶이 숨 쉬고 있는 듯 자연스런 우리네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손맛이 염색에도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녀는 수많은 세월 동안 직접 손으로 짠 천에 염색하기를 원했다. 늘 천을 구해다주는 할머니들이 몇 분 계셨는데, 이제는 사람 손으로 직접 짠 천은 너무 귀해서 도저히 구할 수 없다고 하자, 그녀는 그러면 사람들이 입었던 옷이라도 좋으니 좀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들은 다양한 물건들을 많이 가져왔는데, 어느날 우연히 눈에 띄는 물건이 있어서 자세히 보았더니 아주 신기했다.
여자의 속곳인데, 참 희한하게도 속곳의 배 아래의 부위부터 무릎 위까지의 가려지는 부위만 비싼 비단으로 지어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비싼 비단의 경우 남들에게 잘 보이도록 옷깃이나 소매 단에 붙여 멋을 낼 법도 했다. 그런데 왜 이 속곳은 보이는 곳은 모두 평범하고 보이지 않는 부위에만 비싼 천으로 되어 있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해 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질 않아서 급기야는 어머니에게 여쭤 보셨다.
“엄마, 이 속곳은 왜 하필 보이지 않는 곳에 이렇게 비싼 비단을 댔을까예? 일반적으로는 보이는 곳에 비단을 안 쓰는교?”
한참을 빙그레 웃으시던 엄마는 조용히 입을 떼시기 시작하셨다.
“니 정말 모르겠나? 가만 생각해 보그라. 시집보내던 각시 집안은 부자였던 기라. 딸아를 시집보내는데 정성껏 혼수를 준비하며, 시집보내는 집안에 가서 동서들 간에 질투나 시기 없이 잘 지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말고 잘 살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있는 기라.”
겉으로 보기에는 동서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만들어 우애 좋게 살도록 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기죽지 말라는 엄마의 깊은 뜻. 드러나지 않게, 다만 당당히. 엄마의 그 말 속에 우리의 정서와 삶이 담겨 있더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한국인의 정서인가.
오늘날 우리는 남을 배려하기보다 나 위주의 생활이 습관화되어 있다.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작은 스토리 하나에 우리는 누구였는지? 어떤 민족이었으며 얼마나 우아한 민족이었던가 다시한번 되새기게 한다.
강남 강북 혹은, 서울 지방 등의 자본주의의 영향을 받아 빈부의 차이로 인간사의 갭은 점점 벌어지고, 그 옛날 있어도 없는 듯 드러내지 않고 드러내는 것 자체를 되레 천박하다 여겼던 우리 민족이었건만 얼마나 우리는 시대의 혼돈 한 가운데에 서 있던가. 한국인의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마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인가. 마음으로 주고 마음으로 받을 줄 아는 품격있는 자태.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아니었던가. 예술이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없으며 삶 자체에서 이렇게 우아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