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by 이로현

1.


‘가족’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먼저 화목한 풍경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가장 행복하고 편안해야 할 그 관계가 오히려 서로를 무너뜨리고 가장 큰 아픔을 주는 때도 있다. 우리 가족이 그랬다. 엄마가 딸들에게, 딸들이 엄마에게, 그리고 자매들끼리도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다.


프랑스에서 고국으로 돌아와 처음 모 대학 강의를 맡게 되었을 때였다. 그때 마침 언니한테서 전화가 왔고, 나는 회의 중이던 카페 안의 음악 소리를 뒤로한 채 잠시 복도로 나와 ‘어쩌면 내가 대학 강의를 하나 맡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런데 언니는 ‘네까짓 게 무슨 강의를 하냐’며,ㅌㅌ 말을 지어낸 게 아니냐고 했다. 마음고생을 꽤 하던 상황이다 보니 그래도 핏줄이라 나의 이 기쁨을 함께 축하해 주리라는 기대로 꺼낸 말이었는데, 어이없었다. 나와 피를 나눈 가족, 그것도 언니라는 사람의 말이라니. 가족 내부의 관계는 피로 맺어진 전쟁터와도 같았다.


우리 집, 내 기억 속의 가족은 늘 상처투성이였다. 그런 존재들끼리는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가장 평온한 상태였다. 차라리 서로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랐다. 감정이든 말이든, 어떤 흐름도 없이 침묵 속에 각자의 공간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평화’였다.

2.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간다. 며칠 전, 늘 항암치료에 따른 가려움증을 호소하는 엄마가 어깨를 긁느라 팔을 위로 올렸다. 다른 쪽 손으로 반대편 겨드랑이 아래를 긁고 있었는데,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무언가가 삐죽하게 튀어나온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게 뭐지?’ 얼떨결에 손을 대보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날갯죽지 뼈였다. 너무나 말라서, 등가죽에 붙어 뼈가 도드라져 보인 것이었다.


처참했다. 나는 고개를 하늘로 향하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 목구멍이 뜨겁게 데워지며 울컥, 무언가가 훅 올라오고 있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의 감정 덩이였다. “도대체 세상에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지었길래, 사람을 이토록 뼈 가죽만 남기시나이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구들 거둬 먹이겠다며 생긴 그 욕심이 습관이 되었던 엄마. 그러나 욕심의 대가는 참혹했다. 사람이 사람의 모습으로 살 수 있는 저 밑바닥, 해골 직전의 모습까지 말라 가는 그 고통의 시간을 자식으로서 바라보는 건 정말로 처절하고도 비참하다.


신을 원망했다. 그러나 내가 믿는 그 신도 이런 고통의 시간을 주며 피눈물을 나와 함께 흘릴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의 탓을 할 수도 없다. 어느 한 삶에 책임을 지우는 신의 모습이 아니리라.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 그리고 그를 보호하던 신조차도 온전하지 못한 인간을 보호한 책임감의 대가로 고통을 받는 모습이리라. 신을 향한 나의 원망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칼날과도 같았다.


왜 나는 엄마가 더 건강했을 때 사랑하지 못했을까. 왜 우리는 끝끝내 따뜻한 가족이 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이토록 사라져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도 아직도 마음속의 응어리를 지우지 못하는 것일까. 죽음은 결국 모든 관계를 종료시키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종료는, 내 안에서 시작된 또 다른 질문의 서막이었다. 나는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그 말라붙은 어깨뼈를 보고는 내 앞에 존재하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숨이 멎을 뻔했다. 그리움은 이미 지나간 것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옆에 있어도 그리운 그런 감정 같은 것. 함께 있으면서도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피부를 넘어 뼈로 남아버린 엄마. 무언가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기력해지는 시간. 말을 건네고 싶어도 닿지 않는 마음. 여전히 마음속에 있는 상처를 꺼낼 수도 없이 허공을 도는 엉뚱한 말만 쏟아내야 하는 마음. “밤새 주사 맞느라 힘들었지? 잘 참았어.” 하며, 손발이 묶인 채 영양제를 견뎌내야만 했던 그 고통의 시간을 아이 칭찬하듯 잘했다고 해야 하는 자식의 입장은 참으로 눈물겹다. 눈물이 나와도 꿀꺽 삼켜가며 밝게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려니, 목은 메어오고 눈시울은 뜨거워진다. 잠시 고개를 돌려 무언가 눈에 들어간 척하며 훑어내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야 하는 순간들.

3.


가족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서로를 가장 깊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가장 오해하고 가장 상처를 주는 관계가 아닐까. 그 안에서 내가 찾은 건 용서도 화해도 아닌, 그저 ‘인정’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였고, 결국 그 상처를 품은 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워하는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루하루 시체처럼 말라가며 죽어가는 엄마를 보며, 나는 우리 가족의 상처를 처음으로 파헤쳐보기로 했다. 비록 그 과정에 묻어두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더 아프게 올라온다고 할지라도, 그 상처들을 모두 파헤쳐서 엄마를 편안하게 떠나보내고 싶다.


그렇게 나는 ‘기획’이라는 내 방식으로, 무대라는 가상의 공간 속에서, 강의라는 또 다른 소통을 통해, 내 가족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침묵을 말로 바꾸는 시작이었다.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세운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한가요?”

그 질문을 되뇌는 마음 한편에서, 프리다 칼로가 떠올랐다. 그녀 또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고 평생을 살았다. 신체적 고통, 사랑의 상처, 가족의 외면, 사회의 왜곡된 시선. 프리다는 그 모든 고통을 직접 그림으로 응시했다. 아픔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화폭에 올려놓았다. 그녀의 자화상은 단지 자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고통을, 자신의 상처를, 자기 존재 전체를 그려낸 것이었다. 프리다는 그림 속에서 외쳤고, 또 울었고, 침묵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의 사랑이자, 살아있음의 증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붓을 들었다면, 나는 펜을 들었고, 강의실에서 말을 꺼냈고, 공공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내 상처를 바깥으로 내보였다. 그 또한 예술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다른 방식으로 꺼내 보여주는 모든 시도는 결국 예술이며, 동시에 치유의 여정이다. 프리다는 그림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견뎠고, 나는 이야기 속에서 나의 고통을 살아냈다. 그녀의 자화상이 그랬듯, 나의 글 또한 누군가에게는 거울이 되기를.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가족이라는 단어 안에 갇혀 있던 고통이 더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그 조용한 확신을 전할 수 있기를.


죽음은 하나의 문이었고, 그 문을 지나 나는 비로소 ‘말하는 나’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이 글을 쓰는 나는 더는 숨지 않기로 했다. 상처를 꺼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한가요?” 그 질문이 당신의 마음 어딘가를 조용히 두드릴 수 있다면, 이 글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라 믿는다.


5.


지난 학기, 나는 학생들에게 리포트 주제로 ‘나는 누구인가?’를 주었다. 그리고 학기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강의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오늘 이 과제를 제출했지만, 어쩌면 지금부터 영원히 고민하게 될 과제를 받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래도록 이 질문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때로는 뒤엉킨 인간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중심을 잃곤 한다. 가족 간 관계이든 사회적 관계이든, 결국 모든 상처는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어루만지고 지탱해 주는, 가장 후회하지 않는 나의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모든 것은 결국 지나갑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그 안에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절반은 잘 이겨내는 중이라는 걸 부디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