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봄날인 오늘, 나는 찐하게 살아가고 있는거겠지?>
밤 11시가 넘은 시간에 마지막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쉴 새 없이 짜여진 올해는 이렇게 서울과 대구 그리고 충청도의 집을 초를 재듯 KTX를 타고 날아다녀야 한다. 물론, 누가 등을 떠밀어 하는일도 아니고,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일이며, 또한 이렇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그냥그냥 살아가게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하루하루 흘러가는 내 인생의 봄날을 그냥 세월이나 보내며 살고싶지 않았다. 오십대 중반이지만 여전히 이루고 싶은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내 인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수포자(수학포기자)의 길을 걷던 내가 통계학을 배우며, 기필코 넘어야만 하는 관문으로 인해 오십 중반에 다시 수학이라는 것으로 인해 머리가 아플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무지 기억이 안 나,(솔직히 이제는 친한 친구 이름도 바로 떠오르지 않기 시작하는 지경이라..) 윗층에 사는 이공계 교수님께 SOS를 보냈다. 물론, 그와 직접 얼굴을 볼 일이 별로 없어서 미술전공을 한 그의 아내에게 SOS를 쳤더니 바로 답이 왔다. 더 좋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서 이웃들과 알콩달콩 차도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내 일상은 여유롭게 차 한 잔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여전히 허락이 되질 않는다. 좋은 이웃들을 향해 마음만은 늘 열어 두려하지만, 자주 봐야 정도 들고, 자주 봐야 마음도 더 통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뽀로롱 보내온 수학풀이에 미소가 지어진다. 바쁜데 식사 잘 챙기고 다니라는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피곤했던 마음마져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어쨌든 올해의 나의 목표는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로 대구로 밤 11시, 밤 12시... 그리고 다시 아침 6시 기상. 택시비에 호텔비, 주유비를 거리에 뿌려가며 시간과 전쟁하듯 치뤄내야만 하는 계획이다. 금요일 밤 12시가 되니 이제야 한 주가 겨우 마무리 되는 듯 마음이 훅 풀려서 이대로는 잠을 이룰수가 없어서 머리도 식힐 겸, 요즘 유행하는 <폭싹 속았수다> 두 편을 이어서 봤다. 극 중 나오는 애순이가 참 부러웠다. 비록 가난했지만, 엄마에게 부족하지 않은 사랑을 받은 애순이와 애순이 밖에 모르는 듬직한 관식이가 애순이를 살아가도록 만드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애순이 자신의 마음일 것이다. 시리즈를 보면서 나의 어린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현재의 나를 만나기도 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순간들이 많다.
애순이는 극중이라 좋은 엄마를 만났지만, 현실에서는 과연 좋은 부모를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주변을 보니 우리의 중년은 따뜻한 부모를 만난 사람들보다 그렇지못한 경우들이 훨씬 많아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멋지게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극중 애순이보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이 훨씬 더 단단한지도 모르겠다.
[ 누구에게나 두 번째 이가 빠지는 계절이 온다.]
[같이 온 소풍인 줄 알았는데 저마다 물때가 달랐다. 썰물가면 밀물이 오듯 누군가는 돌아가고 또 누군가... 새로 소풍을 오는 계절이었다. 최전방 언 땅에서도 기어코 새싹은 고개를 처들고, 그들의 봄 만큼이나 이른겨울이 오고 있었다.]
내 인생에 두 번째 이가 빠졌던 순간들은 언제였던가 기억해본다. 그리고 그 이를 다시 악물며 다시한번 힘차게 치고 오르며 다시 새로운 봄을 맞고 또 다시 겨울을 이기고... 그렇게 우리모두 살아간다. 애순이는 파혼을 하고 지친몸을 이끌고 너덜너덜 집을 찾았지만, 살다가 지쳤을 때 부모님집에서 다시 새 옷처럼 풀먹여 돌아올 수 있는 편안한 집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많을까? 취직 안 한다고 구박 받던 큰언니, 군대에서 제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쉴 새없이 눈치를 주는 부모님들로 인해 어떻해서든 집을 박차고 나가야 했던 사람들이 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애순이가 참 부러웠지만, 드라마니까. 라며 다시금 추스러본다. 토닥토닥 위로해주고 또 위로받는 이웃들과 더 여유롭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자연스레 올 것이다.
모든 상황들은 모두 흘러가는 것들이니까. 내 인생의 멋진 소풍날인 오늘, 나는 과연 이 따뜻한 세상에 소풍나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신나게 잘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애순이처럼 가슴에 사람을 묻고사는 중이다. 몇 년전 아버지와 동생과 대구에 벌초하러 갔다가 수성못 근처에 있는 곳에서 브런치를 먹었어.
< 어차피 사람은 다 결국 고아로 살어. 부모 다 먼저 죽어도 자식은 살아져. 두고봐라, 요 꽃물 빠질 즈음 산 사람은 또 잊고 살아져. 살면 살아져. 손톱이 자라듯이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
글쎄? 언제쯤이나 잊혀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