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이야기

명자꽃

by 이로현

어느 날, 이름 붙여지지 않은 꽃이 나에게로 왔다. 그것은 꽃이라 부르기에도 어려운, 거의 생을 다한 듯 보이는 여리디 여린 나뭇가지 하나였다.


무엇인지도 알 수 없었고,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가지를 데려왔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설명할 수 없지만 놓아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어린 나무는 죽지도, 그렇다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지도 않은 채 그저 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다음 해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더 자라긴 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될지, 혹은 끝내 아무것도 되지 않을지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나는 나의 삶을 견디느라 바빴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시간들 속에서 하루를 버티는 일만으로도 벅찼고, 내가 무엇을 심었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서서히 잊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 나무를 잊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붉은 색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세 번째 봄이었다.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자리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하나의 색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놀라움이라기보다 어떤 응답에 가까웠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명자.

밝을 명(明),

열매이자 존재를 뜻하는 자(子).

빛나는 생명을 품은 나무.


그 이름을 알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나무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을.


명자꽃은 봄이 완전히 도착하기도 전에 핀다. 아직 차가운 공기 속에서 누구보다 먼저 자신의 색을 드러낸다. 그것은 성급함이 아니라 용기다. 완벽한 계절을 기다리지 않는 용기.


충분히 따뜻해질 때까지

자신을 미루지 않는 용기.


우리는 종종 준비가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괜찮아진 다음에, 충분히 회복된 다음에, 확신이 생긴 다음에야 비로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자꽃은 말한다. 그 모든 것이 오기 전에 이미 피어도 된다고. 아직 겨울의 끝에 서 있어도, 마음이 완전히 녹지 않았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쯤 고개를 들어도 괜찮다고.


나는 그 나무를 특별히 잘 돌보지 않았다. 다만 버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쩌면 삶도 그렇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완벽하게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날들이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아무것도 아닌 시간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삶이 조용히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명자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아직 아무것도 피어나지 않은 것 같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날, 아무런 예고 없이 당신의 삶에도 작고 붉은 하나의 빛이 고개를 들 것이다.


명자.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계절에

먼저 피어나는 나무.


그것은 말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언제까지 자신을 기다리게 할 것인가.”


그리고 동시에 아주 조용히 답해준다.


“지금이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