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결혼식

당신은 지금 누구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있는가?

by 이로현

<결혼식>


조선시대에는 결혼이란 ‘사람이 만든 윤리’, 곧 인륜(人倫)의 큰일이었다. 오늘날에도 결혼은 중요한 가문의 행사이지만, 요즘은 점점 젊은 사람들의 개성에 맞게 각자 나름의 축제형식으로 바꿔서 특별한 결혼식을 올리기도 한다. 친정엄마의 화려한 댄스처럼, 양가 두 가문이 만나 또 다른 하나의 가족을 연결하는 재미난 퍼포먼스들도 보인다. 각 집안의 분위기에 맞는 방식으로 결혼을 축제로 표현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는 아이디어다.


결혼이 가볍지 않은 진지한 의식이라는 점에는 그럼에도 많은 분이 동의할 것이다. 어제 초청받아 다녀온 결혼식 또한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최근 몇 년 동안 본 결혼식 가운데 요즘 보기 드물게 감동적이었다. 결혼식장은 시간별로 예약되어 얼른 끝내는 데 급급한 도심 내 장소가 아니었고, 따라서 다음 행사의 예약자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여유 있게 시작했다. 식전에는 젊은 커플의 어린 시절이 담긴 사진과 영상이 함께 보였다. 각자 귀여운 모습으로 자랐고, 드디어 두 사람이 만나 눈을 맞추기 시작하는 장면과 결혼하기로 하는 모습들이 담겨있었다.


젊은 두 사람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대화하는 장면들이 유독 많이 눈에 들어왔다. 눈빛 맞추기에서 느껴지는 진심은 정말로 서로를 향해 있었다. 그 느낌은 보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순간, 나는 과연 내 배우자의 눈을 단 몇 번이라도 진실하게 바라보거나 마주 본 적이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서로의 눈을 진심으로 바라본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젊은 세대는’으로 시작하는 우리 중년들은 젊은 세대로부터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한다. 얼마나 현명하고 얼마나 똑똑한 젊은이들이 많은지.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있다면 배우자의 눈을 진실로 마주 보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식순은 신랑 아버지의 기도를 시작으로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이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이 사랑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을 잇는 일이자 나아가 하늘과의 약속이며 이 순간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양가 집안 모든 분이 신앙인들이었기에 이런 시간이 더 의미 있었으리라. 이후, 뉴저지 한인교회 목사님께서 이 결혼식을 위해 이 먼 곳까지 오셔서 주례를 맡아주셨다.

주례도 최근에는 번거롭다며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례 목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남편과 아내가 각자 따라 맹세하는 서약식 형식이었다. 그것은 서양에서 여전히 하고 있는 서약식과도 비슷했다. 유럽에서는 혼인을 마치 계약과도 같은 가문 간 동맹과 연합의 의미로 중요시되므로, 사랑보다는 가문의 질서가 우선시되고, 그 질서는 결국 여성의 운명과 신분을 결정짓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실은 동양에서는 게다가 부부 사이의 관계를 오륜의 하나인 부부유별로 설정하여 각자의 역할과 질서가 분명히 나눠지며 현명히 살아가도록 요구하였다. 전통적으로 결혼이란 사랑해서 함께 사는 것이기도 하지만, 가문을 잇고 가정과 사회의 질서를 현명히 잘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 큰 의미였다.


이후, 신부 아버지가 딸을 결혼시키는 아버지로서 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편지글을 읽으셨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전하는 대목에서 많은 분들이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어쩜 저렇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으셨을까.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여전히 잠을 자는 너희 엄마에게 그동안 수고 했다고 마음속으로 감사의 말을 했단다.’로 시작하는 그 편지가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한편으로 부럽고, 또 한편으로 아버지의 마음이 너무도 고스란히 담긴 그 편지가 어쩌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들려주는 친정 아버지의 이야기 같기도 하여 울컥하였다. 참 고운 결혼식이었고, 너무도 품격 있는 결혼식이었다. 훌륭하신 양가 부모님들 아래 잘 배운 자녀들의 결합으로 조용하면서도 품위가 있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에 대해 너무도 쉽게 생각하는 요즘, 분명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리라.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말들이 있지만, 점점 표현하지 않게 되는 세상. 그래서 당연시되는 세상. 당연히 가족이니까 알겠지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눈빛으로 말할 수 있는 현명함.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 그것이 아마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싶다.


돌아오는 기차는 다행히 그간 뜸했던 지인 한 분과 동행하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녀 또한 이 결혼식이 너무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던 것 같다. 그녀의 결혼식에서 투병 중의 아버지가 손을 잡아주고 6개월 후 세상을 떠나셨다며, 그녀의 아버지도 떠올랐나 보다. 우리는 그렇게 촉촉하고 감동적인 결혼식을 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언젠가 나도 내 아들을 결혼시킬 텐데, 그때 나도 저렇게 훌륭한 모습의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 그때까지 멋있는 엄마로 잘살아야지.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