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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Sep 13. 2024

20년째 계속 신입직원 1.

이직한 것도 아닌데.. 같은 회사에서 3년마다 신입직원이 된다

어느덧 회사에서 근무한 지 20년이 되었다.

20년이면 베테랑급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분야에서 5년~10년 집중하면 전문가 수준이 되니까.

이직한 적 없이 한 회사에서 근속연수가 20년이 되었지만,

나는 20년째 신입이다.


처음 입사했을 때

이때는 당연한 신입.

더도 덜도 아니고 그냥 딱 신입.


출근 첫날

오전은 직원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상사분들과 면담인사를 나누고, 환영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부서배치를 받고 지정받은 내 자리에 앉았다.

우리 부서 업무가 포함된 사업부문의 총괄매뉴얼을 읽어보라고 선배님께서 주셨다.

다 읽을 필요는 없고 일단 우리 부서에 해당되는 부분만 읽어보라고 하셨다.

용어도 낯설고 재미도 없고 진도는 더디고 해서 잠이 오려했다.

신입이 매뉴얼을 앞에 놓고 졸 수가 없어서 졸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고 있었다.

매뉴얼을 한 줄 한 줄 성의껏 읽으려 노력하고 있을 즈음 부장님께서 부르셨다.

우리 회사에는 수많은 규정이 있고, 규정에 따라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씩 매일 아침 규정 테스트를 할 것이니 공부하라고 하셨다.

매뉴얼도 어려운데, 규정은 더 어렵고 낯설었다.

퇴근하고 도서관을 갔다. 매뉴얼과 규정을 가지고.

취업준비생 때 왔던 도서관을 이렇게 다시 또 올 줄이야..

규정을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하였다.

그런데... 부장님께서 테스트 질문을 하시면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뭐지?... 읽을 때는 이해가 되는 것 같았는데.. 도서관에서 공부까지 했는데..'

(실무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때 규정 적용도 수월하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부장님은 모닝 규정 테스트를 한 후 설명을 하셨다.

어떤 날은 즐겁게 친절하게 설명을 하셨고, 어떤 날은 화를 내셨다.


그렇게 규정과 매뉴얼 공부로 2주가 지나고

나에게 본격적인 업무가 배정되었다.

일단 OO업무 계획서를 작성해 보라고 하면서 선배(나의 사수님)님이 1시간 정도 설명을 해주셨다.

어려운 거 아니니까 일단 시작해보고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전임자가 했었던 파일을 참고하라고 주셨다.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그렇게 하면 된다고.

막상 시작하려니 머리와 손이 멈춰버렸다.

맞는 건지 맞지 않는 건지 판단조차 되지 않아 난감했다.(메타인지 제로 상태)

그래도 시작해야 하니 전임자가 했던 자료를 기준으로 유사하게 작성했다.

선배님께 계획서를 보여드리며 한번 검토해 달라 말씀드렸다.

읽어보시더니 별다른 코멘트 없이 부장님께 최종 컨펌을 받으라 말씀하셨다.

부장님께 그대로 들고 갔다.

부장님의 첫 말씀 : "이 OO업무 계획서와 관련된 규정과 매뉴얼을 함께 가지고 와서 보고하도록 해"

나 : "네?"(화들짝)

부장님 : "다음부터는 계획서든 보고서든 해당 규정과 매뉴얼을 함께 가지고 와서 보고하도록 해"

나 : "네에.."

몸이 굳어버렸다.

천천히 내 자리로 돌아와서 내가 알고 있는 규정, 매뉴얼, 본사에서 내려온 문서를 찾아보았다

하나하나 대조를 해가며 이건 이래서 이렇게, 저건 저래서 저렇게, 그러니까 요렇게 하는 게 맞는 거겠지

아주 슬로우 버전으로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처럼 작성한 계획서의 하나하나를 확인해 보았다.

그러고 나서 선배님께 여쭤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부분이 이상 없는지를.

맞는 부분도 있고, 변경된 부분도 있어서 수정이 필요했다.

변경된 부분은 규정에도 없고 매뉴얼에도 없었는데..

선배님께서는 아주 세부적인 것까지 매뉴얼에 등장하지 않고, 매뉴얼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렇군... 그런데 매뉴얼에 없는 세부적인 것들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전임자, 선배님들께 여쭤보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일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담당자로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영역들, 매뉴얼과 규정에는 없지만 실제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들. 이런 것들이 쌓여서 담당자의 노하우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하루 이틀,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회사 적응근력을 쌓아가게 되었다.

(물론 부장님께 야단 맞거나 업무 파악에 오류가 생겨서 화장실에서 우는 날을 포함하여)

규정과 매뉴얼의 중요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가며 근무하다 보니,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리고 진행하면서 규정과 매뉴얼을 찾아보고 확인하는 습관도 형성되었다.

또한 처음에는 내 업무만으로도 벅찼는데 나중에는 우리 부서의 다른 업무에도 눈을 뜨게 되고, 나만의 매뉴얼을 작성하는 여유도 생겼다.

흩어져 있는 업무별 세세한 사항 정리도 할 겸, 혹시 새로운 신입이 들어오면 설명하는 용도로 사용도 할 겸 작성하였다.

입사 2년 후 우리 부서에 신입이 들어왔다. 나보다 3살 많은 신입 입사.

내가 그랬듯이 신입도 매뉴얼 학습에서부터 시작했다. 

나이는 나보다 3살 많지만, 이 회사에서는 내가 입사 선배니까 후배에게 가르침을 주어야지 생각하고 부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회사에서 제공한 매뉴얼과 내가 작성한 매뉴얼 2개를 펼쳐놓고 내 나름 자세하게 설명하였다. 

설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였다.

"빨리 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빨리 하다가 실수하면 바로 잡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더 고생해요. 비효율적이죠. 그러니까 천천히 하나씩 하세요. 그리고 신입일 때 많이 물어보세요. 한~~ 참 근무한 사람이 질문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만, 신입이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거니까요."

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말이었다.


입사 후 3년 차가 되니 업무가 조금 편해졌다.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고, 뭘 모르는지 조차 몰랐던 시기를 보내고 나니

이제는 업무마다 어떤 규정을 찾아봐야 하는지 판단력이 생겼고, 조금 더 수준을 높여서 일을 해봐야지 하면서 3년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기 인사 시즌을 맞이하여, 부서 변경 발령이 났다.


새로운 부서에 가서 인사를 했다.

같은 건물에 있어 안면은 있었지만, 부서근무는 처음 시작하게 되는 멤버들과 인사를 하며 신입 때 느꼈던 긴장감이 다시 느껴졌다.

나는 이 부서 업무에 문외한이다. 금시초문이다.

회사에 입사한 지 4년 차이지만 새로운 부서(A)에 발령 난 나는

회사에 입사한 지 1년도 안되었지만 A부서에서 10개월째 근무하고 있는 직원에게 업무를 배워야 한다.

다시 신입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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