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부서로 인사 발령 나고 나는 다시 신입이 되었다.새로운 부서 멤버를 만나 인사하고,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니 입사 시점으로 리턴한 것과 같았다.
이 부서에서 내가 맡은 일은 외부고객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외부고객에게 OO카드를 발급하는 업무. 그 당시에는 고객이 방문하여 카드를 발급받는방식이어서 날마다 고객을 대면 응대하였다.
카드 발급 업무의 기본 개념을 파악하고 시스템 사용법을 숙지하는 것이 급선무였다.바로 앞에 계시는 고객분께 “제가 이 일을 처음 해서 잘 모르니 일주일 후에 오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당황스러웠다. 적응기간이고 뭐고 따질 것도 없이 바로 실전 투입이었다.
첫날은 전임자가 와서 고객에게 카드를 발급하면서 나에게 일을 알려주었다(인계인수). 나의 눈과 손은 엄청 바빴다. 전임자가 말한 내용을빛의 속도로 메모하고 시스템 메뉴 화면을 눈으로익히며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배웠다.
점심시간이 되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너무 긴장&집중 모드여서 인지 나의 에너지는바닥상태였다.하지만 새로운 부서에서의 첫날이니 모든 부서원이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여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사람들은 낯설고 이미 탈진상태이고 내일부터 혼자 해야 하는 걱정이 앞서다 보니 밥이 무슨 맛인지 느끼지도 못했다.
힘든 하루였다. 지쳤지만 걱정이 앞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뜬 눈으로 시간을 보내다 아침 일찍 출근하였다. 업무 개시 전에 복습이 필요했으니.가장 먼저 출근하여 어제 메모한 내용을 보면서 시스템 화면과 대조해 보았다. ‘특수 케이스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한걸음 한걸음 시작해 볼 수 있겠지.’
나를 다독이며 9시에 업무를 시작했다. 불안했다. 일을 하면서도 혹시 나중에 대량 회수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되어 계속 긴장하였다.
‘이렇게 하면 맞는 것일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첫 일주일이 지났다. 다행히 특이 케이스가 없어 무난한 일주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업무 매뉴얼을 펼쳤다. 일주일 동안 내가 실행했던 부분을 매뉴얼에서 확인했다. 모르고 있던 부분도 시스템 메뉴를 클릭해 가면서 확인해 보았다. 그렇게 시나브로 업무를 익혀갔다.
새 부서의 구성원은 나를 포함하여 7명이었다.
부장님은 이전 부장님과 다른 스타일이셨다. 업무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담당자를 전적으로 믿으셨다.
나를 뭐를 믿고 그러시는지... 초보자를 지켜만 보시는 저 평정심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문득 걱정이 앞섰다.
내가 일을 잘못 처리해도 체크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니 불안했다. 이전 부장님은 하나하나 꼼꼼히 따지시는 분이셨는데... 나를 믿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문득문득 자존심이 상할 정도였었는데..
갑자기 상황이 정반대가 되고 보니 ‘크로스체크 해주는 성의를 받는다는 것이 고마운 일이었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이런 생각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나의 업무를 체크해 주는 것 자체는 감사할 일이다. 체크하면서 나를 대하는 나의 자존심을 엄청 긁는 태도(말투, 태도)로 인하여 나의 마음이 상한 것이었겠지..)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전임자에게 자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근속연수고 뭐고 따질 겨를도 없이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질문에 또 확인 질문을 거듭했다.
문제는 간혹 튀어나오는 특이케이스였다. 전임자도 명쾌한 답을 주지 못했다. 본인도 접해보지 않은사례라서 모르겠단다. 매뉴얼도 애매했다.
그럴 때는 차장님께 상의드렸다. 차장님은 좋은 분이셨다. 본인 일로도 바쁘실 텐데 함께 규정을 찾아가며 매뉴얼의 문구를 해석해 가며 고민해 주셨다.
과장님이 두 분 계셨다. 남자 성별 한 분, 여자 성별 한 분.
남자 과장님은 틱증상이 있었다. 머리 흔들기와 킁킁거리기. 처음에 킁킁거리는 틱 증상에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어서.
여자 과장님은 뜨개질을 아주 잘하셨다. 점심시간에 주로 뜨개질을 하셨는데 아주 수준급이셨다.
대리님도 한 분 계셨다. 부서원 중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적게 나는 대리님. 그래서 퇴근 후 가끔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분.
업무적으로 연결된 부분이 없었기에 과장님,대리님과는 특별한 트러블 없이 지냈다.
(같은 부서에 있어도 업무를 함께 해보지 않으면 나와 잘 맞는지 잘 맞지 않는지 판단이 어렵다)
근속연수는 꽤 되시는데 직위는 사원인 분도 계셨다. 거의 아빠뻘이셨는데, 조용히 나의 일을 도와주는 경우가 많으셨다. 딸 같이 느껴졌다고 내가 부서를 떠날 때 말씀해 주셨다.
새로운 부서에서 나는 막내였다. 우리 부서 멤버 중 회사 근속 연수가 가장 짧아서 막내. 부서 근속 연수도 가장 짧아서 막내. 나이도 가장 어려서 막내. 그래서인지 멤버분들께서는 나를 신입으로대해주셨다.
전 부서에서 보낸 시간과 쌓은 경험은 나의 자산이 되어 있었다. 부서가 변경되어 새로운 일을 배운 상황은같았지만, 업무를 숙지해 가는 나의 태도는 완전 초보자가 아니었기에 입사하였 때와 비교해 보면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데 조금 수월하였다.또한 부서원 중 특별히 모난 사람이 없어 그럭저럭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즈음.
지사장님께서 나를 호출하셨다.
호출 사유는 내가 친절하지 않다는 것. 친절마인드가 부족하니 친절성을 키우라고 하셨다. 우리 지사에서 가장 고객을 가까이 대하는 일을 하는 내가 친절해야 우리 지사가 친절하다고 하셨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지금과는 다른 친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당시 나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고객의 방문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빨리 발급해 주고, 다시 방문하는 일이 없도록 정확하게 처리하고. 또한 내가 고객에게 화를 내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지사장님께서는 빠르고 정확한 일 처리는 당연한 것이고, 표정과 말투에서 사무적이지 않는 부드러움이 나타나야 한다고 하셨다.
그 후 뒤통수 느낌이 서늘하여 뒤돌아보면 지사장님께서 지켜보고 계셨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트레스받기 시작했다.
고객은 [좋은 사람-보통 사람-안 좋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고객에게 나는 친절해야 했다.
나를 예의 있게 대하는 고객, 나에게 무례한 고객 상관없이 같은 수준의 친절을 베풀어야 했다. 50명의 고객을 응대하는 날, 300명의 고객의 응대하는 날 상관없이 같은 농도의 친절을 베풀어야 했다. 지치면 안 되었다. F(x) = 친절
업무가 익숙해지려 하니 나는 친절이라는 [태도]를 요구받고 있었다. [나의 기준과는 다른 기준의 친절을, 강요에 의한 친절]을 실천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고객을 응대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 판단하고 이직 준비를 하고자 퇴근 후 도서관을 다니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부장님께 퇴사 상담을 요청드렸다. 부장님께서는 이직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면 부서이동 신청을 하라 하셨다.
아직 3년이 되지 않았지만 부서이동 신청을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전임자 중 3년을 채운 사람은 없었다)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지사,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났다. 이곳은 외부고객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내부고객을 상대하는 부서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신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