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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Nov 03. 2024

봄이 와서 - 세 번째 이야기

[가을이 3.]

  락도 안 받고 맘대로 보면 안 되지. 내가 모를 줄 알았겠지. 그동안에도 나 모르게 멋대로 본거야? 내 물건 함부로 만지지 않는 거 원칙이잖아. 지금껏 잘 지켜왔잖아. 그런데 왜 책은 못 하냐고. 거실에 있는 책 보면 되잖아. 왜 굳이 내 방에 들어와서 내 책을 만지느냐고. 읽고 싶으면 도서관 가서 빌려오면 되잖아. 내가 책 망가지는 거 싫다고 그래서 안된다고 얘기했잖아. 그러면 지켜야지. 봄이가 내 책 만지는 거 불안하다고. 구겨질 것 같고 찢길 것 같고 뭔가 지저분한 것을 묻힐 것 같고. 나처럼 소중히 다루지 못하잖아. 무엇보다 내 책이잖아.

  우쿨렐레도 그래. 갖고 싶으면 용돈 모아서 사면 되지. 작년에 내가 칼림바 사니까 봄이도 따라서 샀잖아. 우쿨렐레도 필요하면 자기 돈으로 사면되잖아. 나는 몇 달 동안 힘들게 용돈 모아서 이거 산 건데. 그리고 조율도 할 줄 모르면서 그냥 연주하면 된다고 생각하잖아. 학교에서 배워서 할 줄 안다고? 다 알면서 그럼 코드변환은 왜 물어봐?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잖아. 그러다 내 우쿨렐레가 망가지면 어떡해? 왜 내가 오케이 하지 않았는데 몰래 쓰냐고? 앞으로는 봄이 노래 부를 때 우쿨렐레로 연주 안 해줄 거야.

..........

  봄이랑 다투고 나면 맘이 편치 않은데.. 근데 지금 당장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봄이  3.]

  속상하다. 언니책 진짜 조심히 읽었는데 진짜 하나도 망가지지 않게 조심했는데 언니가 화를 엄청 냈다. 책 너무 재밌어서 계속 읽느라 언니가 온 줄도 몰랐다. 언니 들어오는 소리를 내가 왜 못 들었을까?.. 언니 오기 전에 조심조심 제 자리에 꽂아두려고 했는데..

  우쿨렐레 만진 거는 어떻게 알았지?.. 내가 케이스에 원래 모습대로 안 넣었나?.. 위치가 잘못 됐나?..

언니 거는 뭐든 좋아 보인다. 왜 그럴까?..

  어떻게 사과하지?.. 사과를 받아주긴 할까? 요즘에 언니랑 사이좋았는데.. 같이 노래 부르고 친구들 얘기하고 정말 좋았는데.. 내가 망쳐버렸어.. 어떡하면 좋아..

  나는 이런 불안과 걱정이 너무 싫은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엄마 3.]

  올해 들어서 한 번도 다툰 적이 없었는데 이게 뭔 일이래.

  가을이에게 뭐라 말하지?.. 동생이 책이랑 우쿨렐레 좀 만졌다고 그렇게 화내는 언니가 어딨어? 동생에게 매정하게 굴지 말아라 하면 더 화내겠지. 다른 사람 물건 허락받고 사용해야 하는 거 기본이잖아 그러면 뭐라 말하지?.. 엄마가 보니까 봄이가 진짜 조심히 책만 읽더라 그러면 봄이 편만 든다고 하려나? 엄마도 알고 있었으면서 엄마가 허락한 거냐고 따지려나?..

  봄이에게는 뭐라 말할까?.. 많이 놀랐을 텐데. 가을이 들어왔을 때 내가 방심했어. 얼른 봄이한테 알려줬어야 했는데. 우쿨렐레 만진 거는.. 봄이 우쿨렐레를 하나 사줄까?.. 가을이는 용돈 모아서 사라 했는데 봄이는 내가 사주면 불공평하다고 따지려나..

  둘 다 속상하니까 진정되게 일단 기다리자. 가을이도 봄이도 둘 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거야. 좀 기다렸다가 한 명씩 얘기해 봐야겠네..


(*초록담쟁이의 아름다운 날들 사계절 컬러링북을 색연필로 색칠한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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