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하게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중간중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오를 때도 있었지만, 아이들의 시선을 생각하며 버텼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랬다고 나의 당찬 목표를 아이들에게 선포했으므로 중간에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평일은 퇴근 후 저녁시간에 2시간~2시간 30분. 주말은 5~6시간 정도 투자했다.
첫째 아이를 따라 스카(스터디카페)도 가보고, 도서관 열람실도 갔다.
첫째가 오전 오후 저녁 분위기 바꿔가며 공부하는 게 집중이 잘된다더니 나도 그랬다. 주말 낮 동안에는 도서관이 좋았고, 저녁에는 스카가 좋았다. 요즘 스카는 예전 독서실과 달리 아주 쾌적하고(온도 습도 딱 좋음), 커피와 차 종류, 사탕까지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어 참 좋았다. 스카 커피가 내 입맛에 딱 좋았다.
그렇게 2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부를 했었는데, 딱 하루는 쉬었다.
왼쪽 엄지손가락에 유리 조각이 박혀 외과병원에 가서 제거 수술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아무 정신이 없었다. 그다음 날부터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손가락 핑계로 하루 이틀 쉬다 보면 나태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앞으로 해야 할 문제집 분량을 넘겨보다 깜짝 놀랐다.
뒤 부분에 VOCA가 DAY1부터 DAY20까지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LC와 RC만 각각 DAY1부터 DAY20까지 있는 줄 알았는데 VOCA도 있었다니. 맞아 VOCA가 중요한데 없을 리가 없지. LC에 자신이 없어서 인지 자꾸 LC가 싫어졌다. 그래서 RC와 VOCA를 위주로 공부하였다. LC는 투자 시간 대비 OUT PUT이 별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LC는 이틀에 한번 정도로 줄였다. RC는 하다 보니 조금씩 기억이 살아나서 그래도 할만했다. 문법도 조금씩 기억나고 독해도 처음보다는 할만해졌다. 단어는 여전히 오늘 외웠지만, 내일이 되면 처음 보는 것 같은 그런 수준이었다.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계속 누적 복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확실히 기억나는 날이 있겠지 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오늘 기억이 안나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990점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이들에게 과도한 관심과 잔소리를 거두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아이들에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결과가 나빠도 과정이 나쁘지 않으면 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초심을 잊지 않기로 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야.
우리 아이들도 그러면 되는 거야. 매 순간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실을 맺을 거야. 가끔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그 자세와 태도만큼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