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시절이 어수선하다. 마치 유리창 밖 짙은 안갯속 ― 격랑 속에 표류하는 ― 작은 돛단배 한 척을 보는 듯한 불안함과 착잡함과 안타까움과 번뇌의 연속이다. 언뜻 깊은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아프리카물소 한 마리를 둘러싸고, 사자 무리와 하이에나 떼가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며 괴성을 질러대고 포효하는 가운데 아프리카 들개, 자칼, 독수리, 까마귀 집단들이 ― 덩달아 고갯짓을 하고 킁킁거리며 ― 낄끼리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엿보는 형국이기도 하다.
지워지지 않는 참담한 기억이 하나 있다. 사십 대 중반 무렵의 일이다.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그것도 직장 상사와 몸싸움을 하게 된다. 명목상 싸움이지 실제로는 일방적으로 당한 구타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애당초 그는 내 상대를 넘어섰다. 페더급과 미들급의 몸집 차이에 키마저 5~6cm 정도 더 큰 그는 실상 직장 내에서 ― 말보다 늘 주먹이 앞서는 ― 누구라도 맞상대를 꺼려하는 독불장군식 과격한 타입(type)이었다. 처음부터 그와 대립각이 진 건 아니었다. 평소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던 처지의 그와 한 부서에 근무하게 된 게 직접적 원인이었으나, 속내는 서로 경원하던 그와 부서장의 대리전에 말려든 결과였다. 부장인 그는 제반 업무를 전결권으로 밀어붙이려 했고 부서장은 차장인 나를 통해 그를 견제하고자 했음이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는데, 돌이켜보면 중간에서 융통성 있게 대처하지 못한 스스로의 책임도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간부 조회 후 그가 부서장실로 나를 불렀다. 부서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마자 그의 선공으로, 얼떨결에 시작된 주먹다짐은 사무실 중앙 빈 공간으로 무대가 옮겨졌고 어느 순간 의식을 잃고 말았다. ‘내가 왜 여기 누워있는 거지?’ 어딘가에 반듯하게 누워 있다는 자각과 함께 제일 먼저 등이 너무 차갑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어 전체적 상황 판단이 되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말하자면 일시적으로 다운이 된 것 같았다.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걸까. 주눅이 든 부서장은 은연중 그에게 고개를 주억거리기 시작했고, 서너 발자국 앞에서 마주친 신임 직원들은 재빨리 눈길을 피하고 못 본체 했다.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생긴 일들이었다. 말 그대로 썰물처럼 재바르게 빠져나간 인심은 하루아침에 왕따 신세로 전락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조퇴 신청을 하자 그는 부장인 자기에게 맞아 기분 나빠 조퇴하는 거냐며 노골적으로 이죽거리기까지 했다.
마트에서 소주 2병을 샀다.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산으로 향했다. 매일처럼 새벽 운동 차 오르는 산길임에도 그날따라 더없이 우울하고 처량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다.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7부 능선에서 골짜기 아래쪽으로 길도 없는 곳을 헤치며 내려갔다. 커다란 바위 옆에 기대앉자 비로소 눌러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되지.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제일 컸다. 그때 처음으로 작은 일에는 누군가의 충고와 조언이 필요할지 몰라도, 중차대한 일은 혼자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통감했다. 당연히 친구 등의 충고와 조언은 떠올리지 않았다. 불문곡직(不問曲直) 그냥 이대로는 못 견딜 것 같았다. 결국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속담처럼 사표를 내든가 아니면 맞은 만큼 되돌려주는 방법밖에 없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래, 맨손으로 맞았으니 맨손으로 되갚아주는 거다. 마음을 다잡았지만 선뜻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상상만으로도 숨결이 가빠지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트릭(trick)을 쓸까. 어떻든 무너진 자존감을 되찾아야겠다는 의지만은 불길처럼 거세게 타올랐다.
사흘 후였다. 샤워를 마치고 들여다본 거울 속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끔찍하고 민망스러웠다. 온몸이,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가 시퍼런 멍투성이였다. 몸무게도 하루에 1kg씩 3kg이나 줄어들었다. 마침 전날 당직 근무를 한 때문에 감정 조절에는 어느만큼 여유가 있었다. 간부 조회를 마치고 부장실 문을 노크하자 소파에 기대어 있던 그가 심드렁한 눈길을 보냈다. 결재 서류를 내밀자 그가 시선을 떨구었는데 그래도 불안이 가시지 않아 다시 창문 쪽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 구둣발로 혼신의 힘을 다해 그의 턱을 세차게 걷어찼다. 그가 멀뚱한 시선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는데 나중에 되짚어 보니 일순 그로기(groggy) 상태였음이 분명했다. 그와 다시 드잡이질을 할 때 부서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왔다. 코피가 터진 그는 아주 한참 동안이나 코를 감싸 쥐고 있어야 했다. 다시 사흘이 지났다. 줄어들었던 몸무게가 하루 1kg씩 사흘 만에 원상회복되었으며 열 발자국도 더 떨어져 있던 신임 직원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머리를 숙였다.
중국 사기(史記)에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는 고사가 나온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 나라의 침공으로 조(趙)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된다. 평원군(平原君) 조승(趙勝)이 초(楚) 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러 가게 되었는데, 삼천 명의 식객 중 문무를 겸비한 20명을 뽑고자 했으나 한 사람이 모자랐다. 이때 평원군 문하(門下)에서 3년 동안이나 무위도식하던 모수(毛遂)가 나섰다. 조승이 어진 선비는 주머니 속 송곳과 같아서 가만히 있어도 드러나는 법이라며 거절하자, 모수가 이제라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면 송곳 자루까지 보여 주겠다며 거듭 간청을 한다. 실제로 초나라에 가서 구원병 요청을 관철시키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은, 조승이 선택한 19명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추천한 모수 단 한 사람이었다.
가끔 지난 일을 돌이켜볼 때가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 번 진 상대에게 다시 도전한다는 건 말처럼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한 번 패배한 놈에게는 꼬리를 내리는 게 절대의 정석이다. 만약 우유부단의 극치로 사표를 냈거나 미적거리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아이들에게 당당한 모습의 아버지나 아내에게 듬직한 면모의 남편은 더 이상 되지 못했으리라. 어쩌면 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에 찬 일상의 유지는 어려웠을 가능성도 크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일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으로 끝날지, 아니면 승자 독식의 역사 기록으로 남을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래도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세 가지 실체는 분명 존재한다. 정답이 없다는, 공짜가 없다는, 비밀이 없다는 세 가지 진리다. 그럼에도 사생결단식 결과에만 연연할 뿐 과정과 절차 등은 아예 도외시되고 폐기되는 세태가 판을 치고 있다. 단세포적 성과 우선주의와 ―자기들끼리만 괜찮으면 된다는 잔인한 팬덤(fandom)식 ― 사이코패스(Psycho-path) 기질의 정당화, 활성화, 보편화 등의 영향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다”라는 말이 있다. 영국 역사학자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이 잠언(箴言) 17장 28절의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에서 따온 말이다. 그러나 그건 대략의 경우에 한한다. 대체적으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사고와 굳건하고 단호한 극기의 의지가 자신을 결정하는 주체가 된다. 그렇다. 혼자 이불 속에서 부르는 만세는 아무도 알아주지도 들어주지도 않는다.
“매 순간 자신에게 충실하자.” 그날 이후 스스로에게 부여한 셀프(self) 슬로건(slogan)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거기에 고대 그리스(Greece)인들이 가치를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데 적용한 세 가지 기준을 접목한다. 첫째 실용적으로 이익이 되는 일인가, 손해가 되는 일인가. 둘째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셋째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일인가, 추한 일인가. 오늘도 종심(從心)의 마음은 오뉴월 찬물에 세수를 한 푸른 청년의 가슴이 되어 ― 이익이 되는 일인가, 옳은 일인가, 아름다운 일인가를 점치며 ― 이불 속에서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긴다.(월간 자유 25년 2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