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정체불명의 우울감과 허탈감과 고립감이 달포 넘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막연하게는 시국의 어수선함이 한몫 거들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섭공(葉公)이 공자(孔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는 참 정직한 사람이 있어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아들이 고발했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감춰 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숨겨 주는데, 정직은 바로 그러한 가운데 있습니다.”숲 전체를 본 섭공이 충(忠)인 법(法)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낱낱의 나무를 짚어 본 공자는 신(信)인 정(情)을 청안시했음을 알 수 있다. 대별하여 국가적 관점과 개인적 처지의 대립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개개인이 무너지면 국가도 온전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나마 세상에는 더러 자신만의 ‘묵례(黙禮)’로 대중의 삶 속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나름 저마다의 주도적 신념으로 올곧은 ‘산상 노인’의 깃발이 되어 순리의 질서를 펼쳐 보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휴일 아침 늦은 산행길이다. 17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더니 한 여인이 올라탔다. 여인은 고개를 살짝 숙여 묵례를 보낸다. 촉촉한 머릿결이 흡사 팔공산 자락처럼 풋풋하고 싱그럽다. 묵례만 아니었으면 늘 그러하듯이, 천장이나 바닥을 바라보거나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터였다. 사십 대 초반쯤 돼 보이는 여인은 몇 가지 상념을 불러온다. 미인은 아니었으나 글래머 스타일로 표정이 맑고 전체적으로 산뜻한 분위기다. 여인은 내리면서 다시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다. 묵례가 이처럼 고상하고 우아하게 느껴진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밝은 햇살 아래 서너 발 앞서 걸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이 더없이 건강해 보인다.
편부 슬하 스물여섯 살 청년이다. 대학생인 그는 학비 보충을 위해 방학 때마다 공장에서 고된 일을 한다. 그와 저녁을 함께 했다. 3일 휴가를 받아 기쁘고, 가까운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를 해서 행복하다는 그는 돈을 쓸 줄 아는 젊은이였다. 여남은 명쯤 되는 손자녀들 가운데 유일하게 할머니에게 때맞춰 건강식품 등을 선물하고, 명절 때마다 외할머니에게도 용돈을 잊지 않는다.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며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엄두를 냈다는 그는, 이십 대를 부모에게 기댈 나이가 아닌 부모에게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 고민해야 될 나이라고도 했다.
새해 벽두 장례 지도사를 만났다. 친인의 염습에서였다. 생각이었을까. 발인 날 새벽, 지하 1층 시신 안치실은 추위보다 더 심한 냉기가 흘렀다.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알코올 솜으로 온몸을 닦아내고, 한지로 몸을 감싸고, 수의를 입히는 절차였다. 하나하나의 단계마다 진정성과 정성을 넘어 기예마저 느껴진다. 고인에게 마지막 예(禮)를 다하는, 장갑조차 끼지 않은 그들의 손길 하나하나가 경건하고 엄숙하며 절제된 의식이었다. 아니 하나의 숙연하고 정교하며 아름답고 숭고한 춤이었다. 엷은 땀까지 내비치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알 수 없는 전율과 함께 깊은 감명을 받았다.
산상 노인은 하산 에 사바흐(Hassan-i Sabbah)의 별호다.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과 블라디미르 바르톨(Vladimir Bartol)의 소설 알라무트(Alamut)에 그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11세기 말 엘부르즈(Elburz)산맥의 해발 2,100m 지점에 알라무트(Alamut) 요새를 구축한 그는 칭기즈칸(Chingiz Khan)의 손자 훌라구칸(Hulagu Khan)에게 함락될 때까지, 정예 암살단을 이끌며 배후에서 150여 년 넘게 중동의 질서를 지배했다. 혼돈을 넘어 그만의 정의와 가치의 깃발을 드날린 것이다.
“법이 몰상식하다”는 분노 하나가 시발점이 된다. 사각지대에 방치된 어린 영혼들의 수호자로 나선 어느 단체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현장을 뛰며 이슈화시킨 아동 학대 사건은 지난 10여 년 동안 무려 100여 건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한 가지 사례만 짚어 본다. 피골이 상접한 아이가 ― 12살 아이의 체중이 8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 내의 바람으로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 먹는 CCTV 영상이었다. 온 국민을 가슴 아프게 했던 그 영상으로 아이는 다음날 커튼에 묶인 채 계모의 무차별 폭행으로 숨지고 만다. 재판부에 반성문과 탄원서를 냈다는 이유로, 산 자의 구조적 인권을 들먹이며, 솜방망이 잣대로 우롱하던 현실에 그는 과감히 맞섰다. 비록 늦었지만 그는 목이 터져라 뒷북을 치고 발품을 파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수사 기관에서부터 입법 기관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 할 수 있는 일들은 그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아동 학대 치사죄로 17년 형에 그쳤던 형기를 30년 형 살인죄로 바꿔, 어렵게 어렵게 국민의 법 감정 눈높이에 한 발 더 다가서는 기적을 연출해 낸다.
저마다 가치와 정의와 상식의 기준이 사뭇 다르다. 시위대 선두를 장악한 흙 한 점 묻지 않은 농업용 트랙터도, 당연하게 1심에서 선고받은 집행유예 징역형도, 우리 법을 연구한다며 법원 내 만들어진 서클(circle)도, 그 어느 것 하나 양심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국민의 법 감정에서 멀어질 대로 멀어진, 대한민국 염치의 현주소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바른 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여든 살을 앞둔 한 원로 가수가 고별 공연을 마치며, 현 정세에 대한 작심 발언 몇 마디를 쏟아냈다. 일부의 반발이 꽤 심한 걸 보면 그의 말이 심히 못마땅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겠다.
“사기꾼은 늘 바보를 이긴다(A crook always beats a fool)”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캠프에서 자주 오갔던 말이라고 한다. 손무(孫武)는 중국 춘추시대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저술한 병법가다. 그는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라는 말로 시계(始計) 편을 시작한다. 전쟁을 속이는 것이라고 단언한 걸 보면 동서고금을 떠나, 승리에 대한 욕망과 집착은 별 차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도의 차이는 분명 실재한다. 양의 탈을 쓴 늑대보다 늑대 탈을 쓰고 돌아다니며 사기치고 공갈치는 양이 더 나쁜 이유다.
“군군 신신(君君臣臣) 부부 자자(父父子子)”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대목으로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삼세(三世)를 관통하는 불변의 진리이겠으나 그 실천이 지난하고 모호한 것 또한 사실이다. 예의와 염치가 멀어진 현 세태에서, 팬덤(fandom)만이 지고 무상의 존재로 여겨지는 끼리끼리의 짬짜미 체계에서, 불현듯 여인의 묵례와 알라무트의 산상 노인을 떠올린 건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과 선한 순리의 정립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다. 묵례가 평화의 메시지로 세상에 온기를 더하고 산상 노인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질서가 온 누리에 가득하기를 진정 고대함이기도 하다. 한 번 더 손나팔을 만들어 큰소리로 외쳐 본다. 대한의 산상 노인, 어디 없을까요?(월간 자유 25년 3월호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