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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미로요리하는남자 Aug 24. 2021

소고기의 시뻘건 물은 피인가 육즙인가.

피라서 싫은걸까, 빨간색이라 싫은걸까?


붉은 고기를 먹는 데에 있어, 박테리아와 기생충은 더이상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전의 글을 통해 이야기 해보았다. 그럼에도 붉은 고기가 여전히 두려운 이유가 한가지 더 있다. 바로 '피'때문이다.

붉은 고기의 식감이나, 철분의 맛 같은 것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굳이 먹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 그것은 완전히 취향과 선택의 문제다. 하지만 그것이 '피' 같아서 싫은 것이라면, '피'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선택이 변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피는 혈장, 혈소판, 적혈구, 백혈구 등으로 이루어진 집합이다. 이 중 하나만 떼어 놓았다고 해서 그것을 '피'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근육에는 모세혈관이 있고, 그 좁디 좁은 사이를 적혈구가 이동하며 산소를 공급한다. 가축을 잡아 피를 빼내는 방혈을 하게되면, 극히 미량의 혈액만 잔류하게 된다.


한가지 질문을 해보자.


100mL의 물에 혈액 0.3mL를 넣으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을 "혈액이다." 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애초에 붉은 빛도 내지 못할 정도의 양이 아닌가.


'The Residual Blood Content of Meat," published in the Journal of the Science of Food and Agriculture in 1977'

'Exsanguination of animals at slaughter and the residual blood content of meat 1984'


이에 대한 연구는 위 논문의 출판연도에서 나타나다시피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관련 논문은 하나같이, 고기에 포함된 혈액의 양을 극미량으로 나타내고 있다. (판매되는 고기에서 혈액의 비율은 0.3% 수준/ 1kg의 고기에 2~9mL의 혈액이 있다.) 아무리 봐도 붉은색을 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기를 썰 때 흘러나오는 그 붉은 액체는 무엇일까?


잔류 혈액은 극미량이라는데.. 이 정도 붉은색이 나온다고??!  거짓말!


호흡하는 동물은, 산소를 신체 각 부위로 보내고 그것을 근육에 저장해두었다가 에너지를 연소할 때 사용한다. 산소를 잘 운반하기 위해서 '산화'라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우리는 그 매개체로 '철'을 사용한다. 철분을 먹고, 그것이 적혈구 구성에 사용되고, 산소가 철과 만나 산화되고 그렇게 적혈구에 저장한 산소를 근육으로 운반한다. 철이 녹슬면 붉은색을  띠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피도 철과 산소가 만나 붉게 되는 것이다. 


(철 말고 다른 매개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투구게' 이다. 그 친구는 구리를 산화 매개로 사용한다. 구리는 녹슬면 파란색이 된다. 따라서 투구게의 혈액은 파란색이다.)


그런데 적혈구가 운반차량이라면, 그 산소를 받아서 저장할 창고도 필요할 것이다. 근육 내에 산소를 저장해두는 창고. 바로 미오글로빈이다. 이 미오글로빈 역시 철을 함유하고 산소를 받으므로, 자연스럽게 붉은색을 띈다. 이것은 단순히 철과 산소의 조합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혈액과는 완전히 별개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고기를 썰었을 때 나오는 붉은 액체는 미오글로빈, 녹은 지방, 젤라틴, 아미노산, 수분 등에 극미량의 적혈구가 섞여 있으며, 사회는 그것을 육즙으로 부르기로 합의했다. 


인간은 피를 두려워하도록 설계되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동족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혈액 매개 감염병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현대에 이르러서 그 위험성은 대부분 통제되고 있음에도 막연한 두려움은 그대로 남아있다. 게다가 그 두려움은 "실제 그것이 아닌 비슷한 무엇"에 까지 이어진다. 무엇이 두렵다면, 그것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실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낭비나 손해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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