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니 괴롭기만 한 것은 없더라
나는 좀 성실한 편이다. 일이 주어지면 대개 꾀부리지 않고 열심히 한다. 게으르다는 평가는 엄마한테서밖에 들어본 적 없고, 그것도 수년 전에 들어본 게 마지막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일은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곤 하는데 바로 결혼과 임신이 그랬다.
한때는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유치원을 졸업하면 초등학교에 가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가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가고, 대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한다.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수순이다. 모든 과정이 취업을 위해 달려가는 듯 보였으므로 최종 목표인 취업을 이루고 나면 당연히 오래 일할 줄 알았다. 초등학교 6년보다 덜 다닐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취업을 하고선 오 년 조금 넘게 일했다. 그러곤 다시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러려고 대학에 다녔나, 어떤 때에는 회의감이 들었다. 고작 오 년 일하려고 비싼 등록금을 쏟아부은 것이 아니었다. 결혼과 임신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이러한 이유가 컸다. 결혼하고서 임신하면 더 이상 나의 일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물론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제일 쉽고 편한 방법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다. 도우미를 고용하거나 지방에 있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 것. 그러니까 양가 부모님 중 한 분이 내가 살고 있는 서울로 올라오는 것. 그러나 이전부터 아이를 낳는다면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기에 이러한 방법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나의 부모님은 이미 나와 동생들을 키우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하였으므로 이젠 아이를 쉬이 들어올리거나 달래지 못했다. 시부모님은 내가 불편했다. 도우미는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버린다. 결국엔 각오했던 대로 집에서 홀로 아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자주 우울감에 빠졌다. 때때로 고립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가능한 성인과 만나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명절이었던가, 아이를 엄마와 여동생에게 잠시 맡기고서 대학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나보다 일 년 먼저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 대학 때 종종 먹던 닭갈비를 먹었는데 뒤 테이블에서는 엠티 이야기를, 우리는 아이와 출산 뒤에 달라진 몸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단 걸 뒤늦게 깨닫고서 깔깔 웃었다. 밥을 먹고서는 커피를 사들고 산책했다.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아이가 예쁜 것과는 별개로 삶이 충만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간혹 딴생각이 든다. 치열하게 뭔가를 하거나 여유롭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일상이 그립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하면 된다. 조금도 늦지 않았다. 늦었다기보단 새로운 포문이 열리기 한참 전이다. 얼마 뒤면 이전과 같은 것, 게다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것들을 할 수 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요즘의 나는 아이 덕분에 별걸 다 한다. 키즈카페에서 트램펄린 위를 날아다니고 난생처음으로 구슬아이스크림을 먹어봤다. 멀리서부터 아이를 보고는 얼굴 근육이 헤실헤실 풀어져서 다가오는 사람들과 살갑게 인사하고 낯선 사람들과 쉽게 말을 섞는다.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누렸던 이전의 삶, 그것만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서 유지하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분명 또 다른 즐거움이 생길 텐데 그걸 몰랐다.
그런 걸 썼다. 결혼하고 임신하고 육아하면서 느꼈던, 이전과 같거나 달라진 일들에 대해 썼다. 지나고 보니 괴롭기만 한 것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