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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Sep 23. 2022

임신하다

임신하고 싶은 마음, 임신하고 싶지 않은 마음

결혼한 지 일 년쯤 지나자 슬슬 임신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이, 명절이라고 남편네 선산에 성묘를 갔다가 마주친 먼 친척 어르신이 아이를 낳아 부모님께 안겨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효도라 했다. 이때 부모님이란 시부모님을, 아이란 아들을 말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 말을 따를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이따금 그러한 말들이 나를 툭툭 건드렸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다. 조선 시대에 태어나 자란 효부도 아니고. 하지만 결혼한 지 삼 년쯤 지나자 계속해서 대답을 얼버무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버무리는 건 일이 년 뒤에 아이를 낳겠다는 또 다른 표현에 불과했다. 아이를 낳을 것인가 낳지 않을 것인가. 낳을 거라면 별다른 계획도 없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해서는 안 되었고 낳지 않을 거라면 양가 부모님들에게 알려야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임신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웃긴 건, 임신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를 낳지 않을 용기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 계획을 묻진 않지만 은연중에 아이 이야기를 꺼내는 시부모님의 기대에 반할 용기가 없었다. 그 바람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게 부담스러웠다. 아빠는 내가 할 말 다하며 사는 앤 줄 알고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많이 말할 뿐이지.


얼마간 두통이 일도록 고민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임신하지 않을 용기가 없으니 임신한다. 이런 이유로 임신하는  웃기다 싶었지만 딱히 아이에 대한 열망이 없었으므로 놔두면 계속해서 시간만 흘려보낼 터였다. 임신하고 싶지 않았던 제일 큰 이유, 직장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지만 결심을 굳혔으니 걱정 대신 대안을 찾기로 했다. 다행히 나는 직장을 관두고도 외주 일을 구할 수 있는 직종에서 일하고 있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외주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꾸준히 하여 자리를 잡아두면 출산 이후에도 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하나둘씩 임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욕이 나왔다. 나는 끝까지 안일했다. 꾸준히 외주를 받아 인맥을 쌓아두 후에 아이를 돌보면서, 혹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서 일할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회사에서보다  바빴다. 눈뜨자마자 컴퓨터를 켰고 잠들기 직전이 되어서야 전원을 껐다. 그런데 돈은  적게 받았다. 일의 퀄리티도 낮아졌다. 욕이  나올  없었다. 나중에는 주문처럼 욕을 외며 일할 정도였다. 그것 하나만이 자유로웠다. 즉각적으로  소리로 욕할  있는 . 그날도 그랬다. 여느 날처럼 신명 나게 욕을 뱉어가며 일하고 있는데 , 순간 아랫배가 싸하게 아파오는 것이 아닌가.


직감했다. 생리통과 비슷했지만 아마 이건 임신의 징후일 거라고.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이건 임신해서 생기는 복통일 거란 확신이 들었다. 바로 약국에 가서 테스터를 사 왔다. 희미하게 두 줄이 떴다. 정말로 임신이었다.


임신의 증상은 가지각색이다. 입덧만 해도 토하는 입덧이 있고 먹는 입덧이 있다. 나는 토하는 입덧을 했다. 토하는 일이 잦지는 않았지만 냄새 때문에 음식을 먹는 게 어려워 살이 사 킬로그램이나 빠졌다. 내내 속이 울렁거리고 꽉 막혀 있는 듯 답답했는데 얼큰한 걸 먹으면 괜찮아질까 싶어 생전 먹지 않던 짬뽕을 시켜 먹어가며 일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서 일을 놓을 수는 없었다. 어느 마감날에는 해가 뜰 때까지 일했는데 마침 그날이 명절 즈음이라 택배를 보낼 수 없어서 일한 걸 챙겨들고 지하철로 네 정거장을 가 담당자에게 건네주기도 했다. 아침 여섯 시 반인지 일곱 시에 둘 다 부스스한 얼굴로 지하철역에서 만나 일한 것을 주고 받았다. 그때에는 그 상황이 웃겨 그냥 웃음만 실실 나왔다. 웃음만 나오는 직업 환경이었다.


이때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이틀쯤은 줄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출퇴근이 없는 프리랜서 일은 회사에서보다 훨씬 고되었는데 어느 날엔 팬티에 피가 비치기까지 해서 겁을 잔뜩 집어먹었으나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일하고 있지 않아도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배가 많이 나온 편이 아니어서 막달에도 큼지막한 옷을 입으면 아무도 임신한 걸 못 알아볼 정도였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서 있기만 해도 오른쪽 갈비뼈 부근이 아파 한 시간 이상을 걷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에는 뷔페에서 고작 두 접시, 그것도 한 접시에는 샐러드를 담고 다른 한 접시에는 음식끼리 닿지 않도록 피자 한 조각, 고기 두어 점 등을 적당히 올려 먹었는데 잠들기 직전에 식도 부근이 타 들어가는 듯한 격한 통증을 느꼈다. 앉지도 서 있지도 못할 정도로 괴로워 목 아래를 부여잡고서 신음을 흘리길 십여 분, 다행히 통증이 사그라들었다. 또 어느 날엔 자다가 요의를 느껴 일어났는데 오한 때문에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초봄이라 그리 추운 날이 아니었는데도 이가 덜덜 맞부딪쳤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오줌 때문에 아랫배가 팽팽하게 부푼 게 느껴지는데도 몸을 일으킬 수 없어 절절매다가 결국 이불을 싸매고서 화장실 앞까지 기어갔다. 그러나 너무 추워 변기에 앉을 수도, 팬티를 내릴 수도 없었다. 이러다 서른두 살 먹고서 팬티를 오줌으로 적시는 게 아닐까 싶어 무서웠다. 이불을 상체에 칭칭 감고서 그 온기에 기대 정말 어렵게 팬티를 내렸다. 오줌을 누었다. 방광의 사정이 비로소 안정되었다. 침대로 돌아가는 길에도 이불을 싸매고서 엉금엉금 기어간 건 당연하다.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산부인과에 가서 물으면 의사는 나른한 얼굴로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임신해서 그래요. 임신해서 배 속에 있는 장기들이 위로 밀려 올라갔기 때문에 통증이 있는 거고, 역류성식도염도 오는 거라고. 또 손발이 퉁퉁 붓는 것은 물론이고 졸리거나 오한이 든다거나 몸이 간지럽거나 문장이 눈에 잘 안 들어오거나 기억력이 감소하는 것 등등의 증상들 모두 임신해서 그런 거라고.


나는 몰랐다. 임신은 여자인 내가 하는 건데도 닥치기 전까진 아무것도 몰랐다. 출산하기 한 달 전까지 무통 주사가 척추에 맞는 건 줄도 몰랐다. 임신하기 전까지는 그런 것 모두 나와 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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