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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람 Sep 21. 2022

결혼하다

웨딩드레스의 역습

스무 살에 남편을 알았고 스물다섯 살에 연애해서 스물아홉 살에 결혼했다. 쓰고 보니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아주 계획적인 연애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실은 스물아홉 살이 되어 여름을 보낼 때까지만 해도 그해에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후에 결혼한다면 지금 이 사람과 하겠지 생각했으나 그건 삼십대 초중반에나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어른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여든 세가 넘은 나의 할머니가 보기에 나는 아직도 시집 못 간 노처녀였다.


후에 생각하길 결혼을 너무 빨리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무엇 하나 자기 뜻대로 결정할 줄도 모르면서 결혼이라는 엄청난 일을 벌린 것이 아닌가. 이십대 중반까지 품 안의 자식으로 자라 독립한 지, 그러나 아빠가 마련해준 집에서 가끔 아빠 카드를 긁는, 경제적으로 독립한 상태는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사오 년쯤을 보냈을 뿐인데 결혼이라는 대단한 일에 덜컥 뛰어들었던 것이 아닌가. 자기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어른만이 결혼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또 헤아려보면 예식장이나 웨딩드레스, 결혼하여 살 집, 신혼여행지 등은 대개 내가 정하였으므로 언뜻 주체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은 이런 건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주어진 자잘한 선택지였을 뿐이었다. 양가 부모님에게서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니 상견례를 해야 할 것 같아 날짜를 잡았고, 이왕 상견례를 했으니 결혼 날짜를 받아보자는 말에 알겠다고 답했다. 예식일은 대개 여자 쪽에서 받아온다 하여 나의 할머니가 길일을 받아왔는데 그게 당장 세 달인가 네 달 뒤였다. 그해에 결혼하면 남편에게, 그다음 해에 결혼하면 나에게 좋은데 여자보다는 남자의 사주에 맞춰 날을 잡는 게 가정의 화목을 위해 좋다는 할머니의 적극적인 주장 덕분에 우리는 12월 27일, 그해가 다 가기 전에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식 준비는 그닥 힘들지 않았다. 예산은 정해져 있으니 거기에 맞춰 집과 가전을 구하면 되었다. 결혼식장과 가구는 전날에 둘러보고서 다음 날에 계약했다.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큼직한 가전은 남편과 산책을 겸하여 동네 하이마트 몇 군데를 둘러보고서 본 중에 제일 저렴한 곳에서 계약했고 웨딩 촬영, 예물과 예단은 생략했다. 웨딩드레스와 메이크업은 결혼식장에 달린 곳에서 하기로 했고 그 밖의 자잘한 것들은 인터넷으로 쉬엄쉬엄 구입했다. 이런 걸 결정하는 건 너무나도 쉬웠다.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굳이 최저가를 안 사도 좋으니 최대한 번거롭지 않게, 가격에 맞춰 품질이 좋은 것으로, 보았을 때 예쁜 것으로 구입했다.


다만 예상 외로 진 빠지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웨딩드레스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는 독하게 마음먹고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했다. 살을 쪼옥 빼놔야 드레스를 예쁘게 입을 수 있다고. 그때의 나는 팔뚝이니 허리니 허벅지니, 이런 데에 살이 도독하게 붙어 있었는데(그래도 지금보다 몸무게가 덜 나갔다) 살을 빼면 태가 예쁘긴 하겠으나 딱히 그 이유만으로 굶어가며 살 빼고 싶지는 않았다. 꼭 살을 빼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없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생이나 입을 법한 작은 레이스 볼레로 같은 것은 입어볼 수 없었지만 그것 말고도 치마가 종처럼 퍼지는 드레스라든지, 인어 꼬리처럼 퍼지는 드레스 등을 입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언제 또 그런 드레스를 입어보겠는가, 두 번 결혼할 생각은 없었으니. 뜻밖의 재미를 발견하고서 신나게 드레스를 입어보다가 결국 다리쯤에서 치맛단이 퍼지는 머메이드 라인의 웨딩드레스를 입기로 결정했다. 남편의 키가 작고 내가 살이 쪘으므로 허리에서부터 풍성하게 퍼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선 안 된다고, 드레스를 입혀주던 선생님이 말하였다. 그런 충고가 아니었더라도 그 드레스가 나에게 제일 잘 어울렸고 (있는 줄 몰랐던) 나의 취향에도 제일 들어맞았다. 그러나 예식일이 되어 드레스를 입는 순간에는 너무 깜짝 놀라 몸이 얼어붙고 말았는데, 드레스를 다 입고 나니 숨을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수, 숨을 쉴 수가 없어요. 그분이 말했다. 아, 다른 신부님들보다 덜 조인 건데. 호흡을 짧게 여러 번 해봐요. 그러면 곧 적응될 거예요. 일단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이를 낳으러 분만대에 오른 임신부처럼 훅훅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정말로 점점 숨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이렇게까지 드레스를 꽉 조여서 입어야 하나. 다들 이렇게 드레스를 입고 있었던 것인가. 왜 아무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지. 식이 끝날 때까지 참을 수나 있을까.


곧 적응될 거라는 말은 진짜였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그럭저럭 참을 만해졌다. 적응하는 데 몇 날 며칠이 걸리는 하이힐보다는 웨딩드레스가 몸에 더 편한 것이었나 보다. 신부 대기실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입장하는 데에도 별 무리가 없었다.


짐작하긴 하였으나 결혼식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나중에 하객 수를 헤아려보니 전부 합해 500명쯤 왔는데 정작 사진을 찍고 간 내 친구는 11명밖에 안 되었다. 사진을 찍고 간 가족은 20명. 나머지는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정장을 입고 와서 혼주에게 인사하고 식을 보고 식사하고 간 사람들은 대개 아빠의 손님들이었다. 남편 쪽도 사정은 비슷했을 것이다. 둘 다 개혼이었고 이때야말로 부모님이 뿌린 돈을 거둘 타이밍이었다. 뭐, 나는 숨이 막혔지만 예쁜 웨딩드레스를 입어본 데에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드레스의 압박감은 즐길 만한 것이 아니어서 후에 남편이 말하길 내가 그날 처음 본 주례 앞에서 빨리 끝나라, 빨리 끝나라를 계속 중얼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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