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구석

by 담빛노트


오늘, 지인에게 맡겨두었던

달력과 책을 찾으러 가게에 들렀다.

대낮인데,

가게 한쪽에 이미 술을 거하게 하신

손님이 계셨다.


눈은 흐릿했고

주변을 훑는 시선엔 묘한 의심이 묻어 있었다.

초점은 풀려 있는데 얼굴은 잔뜩 상기된 상태.

그 순간, 딱 직감이 왔다.


아…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 분이구나.

아저씨는 술을 한 병 더 가져오라 하고,

셀프바에 있는 음식도 가져오라고 했다.

지인은 씩씩하게 말했다.

“셀프바는 직접 이용하셔야 해요.”


나는 쫄보다.

혹시라도 해코지를 당할까 봐

마음속에서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 셀프 안 좋아하는데…”

아저씨는 불만을 흘리듯 말했고,

그 순간 가게 안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내 안의 레이다가 풀가동된다.

만약 깽판을 부리면…

사장님, 주방장, 카운터를 보는 지인, 그리고 나.

그래도 우리는 네 명이고 상대는 한 명이네.

명수 계산부터 하는 나.


이쯤 되면 꽤나 현실적인 쫄보다.

도움을 받아 주문한 우동이 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아오…”

짧은 신음과 함께 짜증이 터진다.


나는 눈이 동그래지고

가슴은 쿵쾅거린다.

어떡하지?

일 터지는 거 아니야?

그런데,

아저씨는 우동에 소주를 붓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가게를 나가버렸다.

“휴——”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인은 놀랄 만큼 담담해 보였다.

그래서 물었다.

“안 무서워?”

그러자 지인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 남편 있잖아.”

“그리고 우리 경찰이랑도 친해. ^^”


아, 그제야 알았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것.

‘역시… 믿는 구석이 있구나.’

그 든든함이란 얼마나 큰 무기일까.


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은 예상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나를 완전히 주저앉지 않게 하는 건

의외로 거창한 용기가 아니라,

내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감각 아닐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

전쟁터에 나갈 때

갑옷을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나를 지켜주는 무언가가 있다는 확신.


그래서 오늘 나는

갑옷의 소중함을

우동 한 그릇에 부어진 소주 반병 속에서

조용히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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