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아이와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시작은 늘 그렇듯 평온했다.
무난하고, 특별할 것 없는 출발.
그래서 더 기대를 품게 되는 그런 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작은 어긋남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평소 갖고 싶다던 물건 앞에 섰을 때
돌아온 말은 단 한마디.
“품절입니다.”
그 짧은 문장이
아이의 하루를 슬쩍 비틀어 놓는다.
가게를 나와 걷던 길,
멀쩡해 보이던 보도블록 하나가
불쑥 발목을 잡았다.
순간 중심을 잃고 주저앉은 아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이는 사람들의 시선.
기분을 바꿔보려
귀여운 인형을 하나 고르기로 했다.
여섯 가지 캐릭터 중
나름의 기준으로 1위부터 6위까지
신중하게 순위를 매겨놓고,
“그래도 6위는 안 나오겠지.”
작은 확신을 담아 뽑았는데
결과는 정확하게 6위.
그 표정을 나는 안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잠깐 길을 잃은 얼굴.
마음에 드는 옷도 있었다.
그런데 “타이트한 핏이라 입어보셔야 해요”라는
말 앞에서 아이의 발걸음은 멈췄다.
입어보지 않으면 확신할 수 없고,
입어보자니 망설여지는
그 애매한 경계.
결국 돌아섰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만
조용히 뒤에 남겨두고.
거기에 축농증 치료까지 더해졌다.
코 안을 넓히는 시술을 받는 동안
아이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아픔과 짜증과
오늘 하루에 대한 작은 원망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순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의 입에서 툭 떨어진 한마디.
“세상이 나 억까하네.”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추며 물었다.
“억까가 뭐야?”
아이의 설명을 듣고,
집에 와서 찾아보니
정말로 그 말이
어딘가에 정식 단어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억지로 까인다,
이유 없이 운이 나쁘다,
세상이 괜히 나만 괴롭히는 것 같다.
그날 아이의 하루를 설명하기에
이보다 정확한 단어가 있을까 싶었다.
(사실 표준어가 아닌 단어는 이상하게
거부감이 들지만...)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다.
크게 망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계속 어긋나는 날.
작은 실망들이 줄을 서서
차례대로 나를 지나가는 날.
어른인 나는
그걸 그냥 “재수가 없네”라고 넘기지만,
아이의 세계에서는
그게 “억까”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조금 웃기고,
조금 귀엽고,
조금은 정확한 표현.
오늘 같은 날,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지는 건 아닐까.
“세상이 나 좀 억까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