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지명유산이 말하다?

(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22화)

by 오해영

지명은 옛사람들의 삶이 삶터와 관계 맺고 그 사연이 땅에 그려져 전해온 문화유산이다. 일단 생겨난 지명은 고정된 채로 머무르지 않고 사람들의 이동과 교류 사회의 변화 속에서 다듬어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한반도와 중국의 지명의 유산은 아주 오래되었으며 이 지명유산으로부터 사회나 국가의 발전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지명유산으로 중국은 9주州를 들 수 있고 한반도 중부이남의 경우 진과 만주지역의 조선朝鮮 부여扶餘등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럼 이들 지명유산은 언제 시작되고 어떻게 변화 발전을 해왔을까? 9주는 자기네가 보유하고 있는 문헌으로 그 내용을 알 수 있으나 우리의 경우 안타깝게도 중국의 문헌이나 역사서에서 그 흔적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문자가 없었고 이들을 기록한 우리의 문서도 중국의 경우보다 훨씬 늦게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의 9주州는 단순한 행정구획이 아니라 고대 중국인이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세계관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기에 9주는 고대 중국 지리의 보통명사이었으나 나중에는 중국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변화하였다. 고대 중국인의 천하 인식이 지명에 깊게 녹여지고 숭배 감정을 일으켜 그들의 지명문화가 되었다.


그럼 9주는 언제 나온 지명일까?


옛 문헌인 설문해자에 따르면 물중에서 거주할만한 곳을 주라 했다. 옛사람의 마음에 중국대륙은 크고 넓은 큰 바다 중에 있는 큰 섬이라고 여겼다. 좌전(춘추시대 역사서)에 따르면 하나라(중국 최초 왕조)를 세운 우임금이 9주의 경계를 마련하여 사람 새 짐승등이 살 곳을 정했다 한다.


산해경(춘추전국시대 지리서)에 의하면 우는 치수를 완성한 공로로 하나라를 세웠는데 치수 과정 중에서 관찰한 각 지역의 지리 수문 물산 인문 특징을 고려하여 9주를 구획했다 한다. 근대 어떤 학자는 우의 9주 획정에 의문을 표시하였는데 전국시기 어떤 사람이 우의 이름으로 9주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럼 사실여부는 어떠한가?


2002년 북경 보리예술 박물관에 있는 청동기 명문에 하늘의 명령으로 우가 대지의 분포도를 계획했는데 산세에 따르고 강물의 흐름을 유도하여 구획했다고 새겨져 있다 한다. 시기는 춘추전국시대 이전인 서주西周 중기나 후기로 보인다.


북송 1123년 임치에서 청동편종이 발견되었다. 그 명문에 제영공과 숙이의 내용이 있은데 숙이의 조상은 송나라(상나라 유민의 나라) 귀족이며 상나라 왕인 성탕은 하나라를 정복 후 우의 9주를 계승하였다고 쓰여 있다 한다. 시기는 춘추 중기로 추정된다.


또 다른 증거가 춘추시대 역사서인 국어와 좌전 중에 있다. 즉 초장왕이 주나라 도읍인 낙양에 도착해서 주나라의 상징인 정의 무게가 얼마인지 묻자 주왕실의 관리인 왕손만이 덕은 정에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한다.


여기서 정은 하 왕조를 건국할 때 왕권 상징으로 9정을 주조한 것을 말한다. 왕손만의 대답에서 9주는 하나라 초기에 출현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반도의 진과 한

한반도의 지명을 보면 처음 생겨난 이름이 고정된 채 이어진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계승 보완 확장의 과정을 지나온 유산이다.


한반도는 말 그대로 한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사는 반도 전체를 지칭하는 지명이다. 북한을 비롯한 한자문화권의 대부분 국가들은 아직도 조선반도라고 부르지만.


그럼 한이라는 지명은 언제 어디에서 쓰였을까? 한이라는 지명이 있기 전에 진이 존재하였다 한다.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경 한반도 중남부에 존재했던 여러 부족의 연맹을 진국이라고 불렀다. 이 진국이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으로 발전하였는바 한은 진이 확대된 지명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진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에 대한 기록은 중국 문헌에서 보이며 그 내용도 매우 적다. 그래서 진이 특정한 한 국가를 가리키는지 혹은 인접한 여러 소국 집단을 통틀어 말하는지는 뚜렷하지 않다. 보통 만주지역의 고조선 부여와 동시대에 한반도 중부와 남부에 존재했던 나라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진은 특정지역의 국가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인지 아니면 여러 나라를 일컫는 보통명사 인지 명료하게 설명하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중국 사서나 문헌의 기록으로 중국인의 시각과 생각으로 기재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중국 최초의 통사인 사마천의 사기와 한서에도 진국이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삼한이 진국辰國을 승계했다는 언급은 후한서에 등장하며 삼국지 동이전에서도 진한 사람은 옛날의 진국이다는 언급이 나온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진말秦末ㆍ한초漢初에 중국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만주와 한반도로 피난하는 일이 발생했다. 즉 전국시대 연ㆍ제ㆍ조 나라 사람들은 만주의 고조선 지역으로 피난하고 진 출신의 사람들은 한반도 남부지방인 한지역으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진인秦人이 한韓지역으로 들어왔을 당시는 아직 한이라는 지명이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 고조선의 준왕이 위만(한나라에서 도망친 무장세력)에게 쫓겨나 남쪽으로 이주하여 한 왕을 지칭하면서 한이라는 지명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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