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토에 서서 산하를 바라보다 제25화)
천하 통일 개념이 한반도 보다 중국에서 먼저 생긴 이유를 지리시각에서 바라보기
통일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대화나 미디어에서 사라진듯하다. 분단국 입장에서 난감하다. 통일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양한 요소들이 연관되어 서로 떨어질 수 없게 함이라 설명되어 있다. 즉 인위적으로 연결시킨다는 의미이다.
지명유산이 생기던 아주 먼 옛날로 뒤돌아 가보자. 그때 생존 공동체의 삶터는 먹고 살아가는데 크게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더 필요하다면 주변의 들판이나 산을 개간하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주변 공동체의 삶터들을 인위적으로 합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다수의 삶터를 하나로 묶고 이에 대한 지리지를 구획하게 된다. 그런데 이 지리지의 필요정도와 시기가 한반도와 중국에서 다르게 나타났으며 이 차이가 통일 개념의 일어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왜 그랬을까? 이를 자연지리와 삶터의 시각에서 바라보자. 한반도는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고 주요 강은 이 산맥으로 인해 대부분 서쪽으로 흐른다. 물론 산맥의 동측으로 흐르기도 하며 남해로 흐르는 물길도 있다. 그리고 삶터와 들판은 비교적 낮은 산을 끼고 있으며 물난리가 비교적 적었고 피해정도도 낮았다. 또한 온대 기후대로 경작에 유리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지형의 높낮이 차이가 매우 크며 서쪽이 높고 동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이런 지형에 산맥도 호응하여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다. 이러한 지형특색으로 황하가 대륙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매우 길게 흐르면서 주변의 지류를 싸잡아 나가면서 거대한 물의 흐름을 만들었다.
또한 황하 주변의 생존 공동체들의 자연 지리와 농경 여건은 많이 달랐으며 기후대가 온대에서 한대로 차이가 심했다. 그리하여 황하의 물이 넘치면 수해 범위가 상상할 수없을 정도로 넓었다. 이런 수해복구에 일부 지역의 노력과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물난리의 빈도와 강도가 높자 이를 예방하고 복구하기 위해 강토의 지리를 파악할 필요가 생겼다. 이 필요성이 결국은 천하통일의 개념을 유인해 냈다. 결국 한반도와 중국의 물길의 다름이 천하통일의 필요성 정도와 그 시기의 늦고 빠름에 큰 영향을 줬다.
우공 9주 체제를 보면 한자 정井처럼 중앙에 1개 주를 두고 이 주변에 8개 주로 구성하였다. 이렇게 설계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 의도를 지리지의 시각에서 알아보기 위해 우공에 나오는 기록을 살펴보자.
제일 중요한 항목은 특산물인 공물이다. 이 공물의 품목과 등급 그리고 어떤 경로로 정井자의 중앙인 도성낙양으로 운반하는지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중앙을 둘러싼 8개 주에서 공물을 중앙인 중원으로 집합시키는 기계장치와 유사하다.
공물을 각주에서 중앙에 위치한 도성에 상납하는 이런 체제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공에 나오는 땅은 산 강 호수로 여러 부분으로 나뉘고 흩어져 있으나 이들은 비교적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9주를 조공으로 서로 함께 연관되게 하여 강토를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그리고 각 주의 지명을 보면 8주의 이름이 주변의 산 물길 방향등에 유래함을 알 수 있다. 예주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처럼 지명이 간결하고 직관적이어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좌표로 인식되었다.
(우공 9주 별 지리지의 개념 정리표)
다음으로 9주 별로 자체 문화가 있었는지 알아보자. 중원인 예주는 독자의 문화 설명이 보이지 않고 8개 주는 고유문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익주-후강 2기 문화, 상족의 발원,
연주-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동이족 거주지
청주-진주문화, 서주-두조문화
양주-양저문화 오월문화 호숙문화
형주-출가령문화 석사하 문화,
양주-삼성퇴 문화 보장문화 12교문화
옹주-앙소문화 묘지구 문화.
예주-하상주 3대 통치의 핵심지이나 별도 문화 설명 없음.
9주의 개략적 위치와 지명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익주-산서성 하북성 하남성 일부 지역, 익국에서 유래
연주-하남성 하북성 동부와 산동성 서부, 연수(옛 제수)에서 유래
청주-산동반도 태산과 해안지대, 동방의 청색에서 유래
서주-산동성 남부 강소성 북부, 서주시기 서국에서 유래
양주-북쪽에 회하, 동쪽은 바다, 서측은 형주, 남측 구획 없음
형주-형산 주변, 형산에서 유래, 형荊=초목楚木
예주-중원지역, 도성 건립하여 사방 공물 교통로 연결
양주-사천 지역, 양주 밖의 위수 황하가 있어 건너간다는 의미
옹주-감숙성 청해성 일대, 옹산에서 유래
(우공 9주의 개략적 위치도 바이두)
제일 먼저 서술되는 곳은 동북지역인 익주이고 마지막은 서남지역인 옹주이다. 남측 지역은 지리 내용의 파악이 제한적이다. 특히 중심지인 중원은 사방에서 오고 가는 교통로로 균형 있게 잡혀있다.
그럼 왜 9주를 공물로 연결하려 했을까?
황하의 물난리는 대규모로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물난리를 예방하거나 복구하기 위해 전 강토를 포괄하여 계획적으로 체계적으로 대처하여 나가야 했다. 그래서 천하를 하나의 동원체제로 묶을 장치가 필요하였다. 그 장치가 바로 각 지역의 특산물을 중앙으로 상납하는 조공 시스템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공물 상납체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지리지가 필요하였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통일이 필요하였다. 물논 여기서 통일은 지리개념상의 통일이지 현대의 국토 통일과는 차이가 있다.
삼한의 경우 수십 개의 생활공동체와 삶터를 통제하고 특산물을 한 곳으로 모아 특정계층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개념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랬을까?
주요 특산물을 보면 마한의 경우 곡물 소금이고 변한의 경우 철이었다. 진한은 별다른 상품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특산물의 보면 공동체나 지역 간 경쟁성격이 약하고 보완적 성격이어서 서로 교환되는 물품이었다.
즉 철은 농업생산에 중요한 물품이고 곡물은 철 없이는 생산력 확대가 어려웠다. 이런 구조에서 상대를 정복하여 특산물을 빼앗는 것보다 교역이 훨씬 효과적이었다. 그리하여 물길을 이용하여 서로 교환하였다.
교통로는 강과 하천 그리고 바다를 이용하였지만 물길의 방향이 한반도 어느 한 곳으로 몰리지 않고 서쪽이나 남측이었다. 그리하다 보니 특산물을 통제하여 공동체와 삶터를 넓히는 강토 통합이 아니라 각자끼리 병존을 이뤘다.
또한 삼한의 하천 연안해로의 교통망은 연결을 쉽지만 봉쇄한다던지 통제는 어려웠다. 그래서 중앙집권적인 천하국가 개념보다는 서로건 자율적인 네트워크가 중요하였다.
또 천하통일하려는 국가는 보통 군사와 기술적인 우위가 있어야 하나 삼한의 철은 여러 삶터에서 생산되었고 한 왜 예로 유통되어 전쟁을 통한 강토의 통일을 도모하기 무척 어려웠다.
(산맥을 중심 지도 한국 임업진흥원)
결론적으로 보면 천하의 강토를 엮으려는 개념의 강도가 달랐다. 중국의 경우 전국시대에 천하는 하나여야 한다는 통일 의식이 강하였다. 반면 삼한 사회는 삶터 중심의 공동체이었으며 이들을 대표하는 왕권은 이런 연결체의 질서를 유지하면서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였으며 이를 넘어선 통일 개념은 형성되지 않았다.
또한 삼한 시기 외부의 압력도 크지 않았다. 중국은 멀리 있고 왜는 교역 상대이며 유목족은 직접압박은 없었다. 한반도의 강토 통일 개념은 거란이나 몽고의 압력이 무척 강하였던 고려시기에 생겼다. 그 시기부터 삶터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강토 통일 의식이 발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