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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an 10. 2024

이미지가 뚜렷해지길(우미인 설화)

이미지가 흐린 삶


새해가 시작되니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삶의 이미지를 하얀 도판 위에 평면으로 나타내면 어떤 그림이 될까?  내가 그려보는 이미지와 남이 나를 그려보는 것은 비슷할까? 다르다면 그 다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생업에 얽매었을 때 주어진 역할에 많은 부담감을 가져 일 이외 다른 방면에 눈길을 못 주고 여유 없이 살았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얼굴에 미소와 마음의 여유를 머금은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위안을 삼으며 지냈다. 


또 어떤 이익 앞에서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안달하지 않으며 주변의 동료에게 먼저 가지라는 여유도 부려보았으나 시간이 지난 후 꼭 그렇게 양보(?)를 했어야 했던가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이때를 이미지로 나타내면 뭔가를 꾀병 안 부리고 열심히 하는 것 같고 겉으로 덜 이기적인 체하나 속은 아까워함이라 이를 어떻게 그려 볼 수가 없을 것 같다.  

   

또 업무를 하면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였는데 그 결과에 대해 상당히 만족스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고 반대로 결과를 제대로 이루지 않고 과정도 어정쩡한 상태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를 이미지로 그리면 역시 뭔가 제대로 잡히는 것이 없어 표현하기가 어렵다.     


위와 같이 과거의 나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보려 하면 뚜렷하게 나타낼 뭔가가  없는 것 같다. 지인들은 내가 그려본 특징이 없고 애매모호한 이미지에 동의를 해줄까? 혹여 조그마한 이익 앞에서는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큰 이익을 앞두고는 불나방 같은 무모한 행동을 했던 그림이 어울리며 타고난 재능이 보통임에도 그 뭔가를 수행함에 있어 간절함이 부족하여 과정과 결과가 시원치 않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살았다고 할 것 같은데 왜 뚜렷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을까? 중국인이 나오는 설화중에 역사적 기록은 표시가 잘 나지도 않는 사소한 내용이나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에 뭔가가 심어져서 종국에는 확실한 내용으로 이미지가 그려지는 우미인 설화가 있다.     




우미인 설화 1


옛날에 기질이 뛰어나고 대담하며 남에게 굽힐 줄 모르는 선비가 있었다. 그는 때를 못 만나 공명을 이루지 못하고 명산대천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경치가 아름다운 마을에 닿았는데 마침 해가 저물자 어느 대문 앞에서 하룻밤 머무르기를 청한다. 그 집에서 동자가 나와서 하는 말이 이 집은 서초패왕과 우미인이 사는 집인데 외부인이 머무르다가는 큰 화를 당한다며 숙박을 거절한다.


선비는 아랑곳하지 않고 묵어 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는 중에 서초패왕이 나타나 선비를 쇠사슬로 묶고 꿇어 앉힌다.  패왕과 우미인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가 취기가 반쯤 오르자 선비를 향해 남의 집을 무단 침입함에 대해 꾸짖는다, 


선비는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패왕의 사람 업신 여김과 위력으로 힘없는 선비를 제압하여 책망한다고 대꾸하자 패왕은 눈물만 흘리다 공중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미인 설화 2


항우가 삼촌 항장하고 오중(중국 소주 지방))으로 피신하여 왔는데 이때 우미인이 항우를 보고 흠모하여 시집가고 죽을 때까지 항우 곁을 지킨다. 유방과의 싸움에 졌으나,  다음과 같이 말한 후 목숨을 버린다.  

 

“한나라의 병사가 모든 땅을 점령했는지 사방에서 사면초가만 들리네, 대왕께서 싸움의 뜻과 기개를 다 했으니 난들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기록에 따르면 우미인의 본명, 출생지, 사망경위, 민족 등 어떤 부분도 설명이 되어있지 않으며 단지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우미인이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한다. 


역사 기록에서도 설화에서도 우미인의 역할이 사소하고 뚜렷하지도 않은데 사람들의 우미인에 대한 이미지는 강렬하고 뚜렷하다. 그녀는 예쁠 뿐만 아니라 지조가 단단하여 항우가 싸움에 져서 어려워짐에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는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그 이미지가 현대에도 영화등에서 이용되고 있다.

     

우미인은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가 만들어져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일까? 

         

뚜렷한 이미지가 그려지게 살아보자


나이가 중년에 이른 지금 우미인보다 최소 두 배이상 살았는데 아직도 스스로 나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어떤 뚜렷한 이미지가 그려지는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좋다거나 보람찰 거라는 생각은 아니나 그래도 이왕 사는 인생에 나만의 이미지가 뚜렷하게 그려지게 살아가면 좋겠다.      


그럼 앞으로의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뚜렷해지는 이미지가 그려질 수 있을까?, 삶의 궤적이 그리는 바가 내 그림의 이미지라고 한다면 이제는 다양한 행동을 가지치기하여 단순하게 하고 키울 가지에 집중하여 생활하다 보면 궤적이 선명해지겠지.    

 

그렇게 할 거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새해 설계를 해보는데 사람들과의 관계를 선한 관계가 만들아질 수 있는 사람들로 한정하고 그 이외 사람들과의 경우 가지치기를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리하여 나의 에너지를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열중하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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