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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해영 Jul 17. 2024

크다의 기준을 어디와 견주지
(유방설화)

삶터를 크다 작다로 설명할 때 무엇으로 기준을 삼을까? 아마 외부 세계의 인식 폭과 연계할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 시대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자기가 살아온 공동체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그리하여 크다라고 말할 때 자기가  아는 어떤 형상이나 지식을 떠올리며 주장을 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는 설화 한편이 고령지역에 있다. 이 설화에서는 크다를 중국의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의 나라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설화의 중심어는 한실과 대곡으로 모두 크다와 연계가 되는 단어이다. 조그마한 지역의 지명에도 중국의 역사와 연결이 있음은 한자문화권에서 살아온 우리의 세상 인식 특징일 것이다.




설화 이야기


경상북도에 대곡이란 지명이 많은데 이는 잘못된 이름이다. 고령의 대곡리를 보면 이 마을은 큰 골짜기 안에 있어 한실 또는 대곡이라 한다. 이 마을 옆 소학산에 한 씨들이 임진왜란을 피하여 대거 이주하여 살았기 때문에 한실로 바뀌었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거다.


 왜냐하면 대곡에 한 씨들이 없는데 한실이라고 함은 안된다. 한실 대곡은 그야말로 큰 골짜기이고 한실의 한은 한나라 한 글자다. 이 한자는 넓다는 뜻이고 장기를 보면 한 글자가 쓰였는데 이게 한나라이다.


유방이 세운 한이 넓다는 뜻이라 중국 천지가 넓은 골짜기라는 이야기이다. 창녕, 군위 의성, 합천의 대곡리를 다 다녀봤는데 한 씨들이 없다.   

  



범위가 협소한 마을 단위의 지명은 그곳의 자연지리에 의거 생겨남이 보통이다. 규모가 큰 지역의 지명은 왕조의 지방통제나 관리의 방향에 따라 지명을 결정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이 존재감을 강조하기 위해 지명을 종종 바꾸기도 하였다. 


따라서 좁은 지역인 마을의 지명은 그 이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인근 거주자들이라 그곳의 자연지리 특징 등을 고려하여 지명을 짓고 나라의 통제나 관리의 대상이 되기 어려워 그 수명이 오래간다.     


그런데 왜  마을의 지명에 대해 지역주민이 잘못됐다고 여기게 되었을까? 아마 오래전부터 불렸던 순수 우리말의 지명이 한자를 사용하여 표기할 때 혹은 한자로 바뀔 때 기준을 뚜렷하게 하지 못하고 한자의 뜻으로 표기하였는지 아니면 우리말의 음과 비슷한 한자의 음을 사용하였는지에 따라 원래의 지명이 많이 달라졌을 수 있다. 


이 설화에서는 큰 계곡의 안쪽에 있다 하여 한실이라 했는데 여기서 한의 뜻은 크다의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큰(大)으로 표기하여 대곡으로 표기하게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배경이 잊혀저서 지역주민의 혼란이 생기게 됨이 아닐까 한다.   


또한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고령의 마을단위 지명에 크다라는 뜻을 나타내려고 할 때 한나라를 창업한 유방을 예로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 고령에서 봤을 때 인근 큰 고을인 대구나 경주를 예로 들거나 아니면 가장 큰 고을인 서울을 예로 들어 ‘서울만큼 크다’라고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문화가 시골까지 깊숙이 스며든 영향 때문일까 아니면 설화층의 세상을 보는 폭이 넓고 지식범위가 상당하여 중국 역사 인물에 익숙하게 되었음일까?     


왕조시대 우리는 중국을 대국으로 떠 받들고 살아왔다. 여기서 대국이란 땅의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면에서 강한 나라를 의미한다. 그래서 지배계층이나 사대부들은 중국이 크고 강한 나라 이므로 사대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중요한 정치적 사건을 중국에 기대거나 의식하여 결정하는 경향이 많았다. 


설화층은 중국을 땅덩이가 넓은 나라로만 이해하며 사대부의 생각과 다를 수 있음을 암시함일까? 왕조시대 중국을 땅덩이가 큰 나라로만 여겼다면 정치와 문화 분야에서 과도한 사대주의가 배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령의 지명


삼한시대의 고령군 일대에서는 여담국, 소등붕국 등 여러 부족국가가 있었는데 이들이 발전하여 대가야라는 국가체제를 갖춘 나라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이들 지역은 신라와는 다른 문화가 있었을 것이나 신라에 강제로 편입되어 대가야군(大加耶郡)으로 편제가 된다. 


그러다가 경덕왕 시절 전국에 9주를 설치하고, 군 · 현의 명칭을 고칠 때 이 지역을 고령군(高靈)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령의 나이는 1200세가 훨씬 넘은 아주 오래된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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