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에 뛰어들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남들만큼은 노력했다고 믿었다.
뭐든 '중간'은 갔던 내 인생을, 못났다고 생각하거나 후회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내 인생은 온전한 '나의 결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부모님의 바람, 친구의 권유, 성적에 맞춰 간 학교와 직장.
나는 늘 안전한 선택지 뒤에 숨어 있었다.
결혼 이 후의 생활은 달랐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내려야 할 결정들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랐다.
스스로 선택하는 대신 남들이 가는 길을 좇기에 급급했던 나.
결혼 후 '좀 더 나은 인생'을 꿈꾸며 던졌던 승부수들은,
선택의 근육이 없던 나에게 매번 '오답'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쌓여간 오답지들은, 내 남은 인생을 짓누르는 거대한 부채감이 되었다.
'왜 내 인생에는 이렇게 오답만 가득할까?'
견딜 수 없이 괴로웠던 밤들이 지나고, 문득 낯선 생각이 틈입했다.
'어쩌면, 내가 남들보다 열심히 살려고 발버둥 쳤기에 오답지도 쌓인 게 아닐까?'
나는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수능을 보고 있는게 아니다.
나의 선택이 오답이었어도 고칠 수 있다.
그리고 오답을 하나 걸러냈기에 남들보다 정답을 고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육아휴직을.
금전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정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육아휴직 동안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던 책 읽기를 시작했다.
신기하게 독서를 하면 할수록, 나의 자존감과 삶의 행복지수가 올라갔다.
그러다 문득,
나도 언젠가는 내 사업을 해야 할 날이 올 텐데 미리 경험해보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내 일'을 해보기로 결정하였다.
종목은 '김밥'
이유는 단순했다.
동네에서 아버지가 김밥집을 30년 이상 운영해오신 달인이셨기에,
좋은 스승 밑에서 배운다면 나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왕복 2km 거리를 뛰어서 출퇴근했다.
4시간 동안 김밥을 말고,
재료 준비가 필요한 날이면 저녁에 다시 나가 다시 앞치마를 둘렀다.
몸으로 배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완벽한 '내 것'을 만들기 위해 이론 공부에도 매달렸고,
그 결과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단 한 번의 도전 만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것은 내 지난 선택들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작은 승리였다.
그렇게 몸과 머리로 치열하게 보낸 육아휴직이 끝날 무렵,
'프리미엄 토핑 김밥 Bar, 크런디'
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물론, 현실은 냉혹했다.
생각만큼 화려한 성공은 아니었고,
지금도 여전히 매일매일 난관에 부딪히며 돌파구를 찾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공간을 단순히 김밥과 술을 파는 곳으로만 남겨두지 않을 생각이다.
이곳에서 내가 사랑하는 위스키 이야기를 담은 영상을 찍고,
나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할 생각이다.
비록 지금은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지만, 나는 더 이상 남이 준 오답지를 들고 서 있지 않는다.
어렵지만 내 의지로, 내가 만든 공간에서,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