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친구와 좋은 동업자는 왜 별개인가
"절대로 친구와는 동업하지 마라."
술자리 안주처럼 씹히는 이 흔한 조언을, 나는 가볍게 넘겼다. 나의 동업자는 그냥 친구가 아니었으니까.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공유해 온, 내 속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불알친구'였다.
워낙 착하고 배려심이 깊은 녀석이라, 우리는 다를 것이라 믿었다.
우리는 서울시 동작구 흑석동의 한 자락에서 '크런디(KRUNDI)'라는 작은 위스키바를 열었다.
하지만 장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뼈아픈 사실을 깨달았다.
'착한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은 다르다는 것.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천지 차이라는 것을.
친구는 '말'을 좋아한다. 모든 소통을 말로 해결하려 한다.
글로 남기면 감정이 전달되지 않아 오해가 생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처음엔 그 감수성을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동업은 감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약속'과 '기록'으로 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말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행동하고 기록하는 건 언제나 내 몫이 되었다.
나는 메뉴를 개발하고, 레시피를 정리하고, 매출 추이를 분석하며 '데이터'를 쌓으려 했지만,
친구에게 장사는 그저 그날그날 손님을 맞이하는 '행위'에 그쳤다.
나는 지난 3년간 많이 변했다. 매일 술을 마시고 드라마에 빠져 살던 내가, 술을 끊고 책을 들었다. 운동을 하며 몸을 만들고, 내 삶의 비전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사람이 고쳐 쓸 수 없다는 말, 나는 믿지 않는다. 내가 바뀌었으니까. 내가 증거니까.
나는 내 친구도 변하기를 바랐다. 우리가 함께 운영하는 이 공간이 단순한 술집이 아니라, 맛있는 음식과 술이 페어링 되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어 하는 브랜드가 되길 꿈꿨다.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는 내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 좀 이상해졌어", "말 좀 예쁘게 해 줘"라며 본질을 흐린다. 나는 '발전'을 이야기하는데, 그는 '태도'를 지적한다. 나는 손님에게 나갈 음식의 퀄리티를 고민하며 기성품을 거부하는데, 친구는 내 눈치만 살피며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라고 묻는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늘 하루 별 탈 없이 넘기는 것'이고,
나에게 중요한 건 '내일 더 나은 가게가 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 속도와 속력은 다르다. 속력은 단순히 빠르기를 뜻하지만, 속도는 '방향'을 포함한다. 인생도, 사업도 마찬가지다. 목표 없는 노력은 제자리에서 런닝머신을 뛰는 것과 같다. 땀은 흘리고 숨은 차오르지만, 단 1미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친구는 열심히 한다. 가게에 나와 자리를 지키고, 손님에게 친절하다. 하지만 그 노력에는 '방향'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노를 젓고 있으니, 배는 망망대해에서 빙글빙글 돌 뿐이다.
반면 나는 목표라는 나침반을 들고 있다. 아침 러닝, 독서, 메뉴 개발, 마케팅. 이 모든 노력은 '더 나은 나', '더 나은 크런디'라는 목표를 향해 정렬되어 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친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삶의 목표 없이, 그저 좋은 친구로 남아 장사가 망하더라도 관계가 편한 게 우선인 사람이다. 반면 나는 관계가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우리가 함께 성장하길 바라는 사람이다.
동업자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보다, 묵묵히 1인분을 해내는 실행력이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배려보다,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프로의식이다.
나는 여전히 친구를 아낀다.
하지만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그의 말에는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다.
우리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향해' 잘해야 한다.
그것이 냉혹한 자영업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의 노력은 목표라는 과녁이 있을 때 비로소 화살이 되어 날아간다. 과녁 없는 화살은, 그저 바닥에 떨어지는 막대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