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야 하는 이유.

나이가 들어간가는 것과 늙는것의 차이.

by Sonderist

10대와 20대, 30대와 40대, 그리고 40대에서 50대.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변해간다. 흔히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면의 성숙함을,

'늙어간다'는 것은 육체적인 노쇠함을 의미한다고들 한다.


나는 1982년 2월생이다.


예전에는 인터넷에서 생년월일을 입력할 때 내 출생연도를 찾기가 수월했는데,

이제는 스크롤을 꽤 오래 내려야만 내 숫자가 보인다.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50대라는 숫자가,

40대 중반이 되니 신기하게도 50대를 넘어 60대 이후의 내 모습까지 겹쳐 보인다.

언제나 기회가 있을 것 같았고, 늘 도전적인 마음으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지는 기분이다.

행여 그 얇아진 마음이 찢어질까 매사 조심스럽게 살아가게 된다.


젊은 날엔 앞뒤 가리지 않고 내 몸 하나만 잘 건사하면 되었기에 결정도, 포기도 쉬웠다.

하지만 이제는 결정은 어렵고, 이미 시작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 때문에 포기조차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야간 당직을 서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5시, 뇌 MRI 추적 검사를 위해 30대 중반의 여성 환자가 병동에서 내려왔다.

곁에는 보호자인 어머니가 함께였다.

환자는 뇌출혈로 식물인간 직전의 상태였다. 누워 있는 환자는 너무나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의식은 없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마치 평범한 딸을 대하듯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였지만,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검사 잘 받고 와. 엄마 여기서 기다릴게. 우리 딸, 잘할 수 있지?"


20분 남짓 진행되는 검사 시간, 우연히 본 CCTV 속에서 어머니는 기도를 하고 계셨다. 병원에서 18년을 일해 온 나는 경험으로 알 수 있다. 환자가 회복되기는 힘들 거라는 사실을.

그래서 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나의 마음은 먹먹했다.

검사가 끝난 후, 보호자는 마치 학교 다녀온 딸을 맞이하듯 밝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건네며 병동으로 올라갔다.

나에게는 보였다. 어머니의 그 밝은 표정 뒤에 가려진 깊은 슬픔이. 하지만 감히 그 누구도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침에 퇴근하자마자 집에서 나를 맞아주는 아내, 딸, 아들을 꼭 껴안았다. 일상의 행복이 피부로 느껴졌고, 평범한 나의 하루에 사무치게 감사했다.


요즘 나는 '나이가 들고 있다'기보다 '늙어가고 있구나'라는 무력감에 자주 빠지곤 했다. 그런 생각이 일상에 스며들어 나를 점점 작아지게 만들고 있었다. 많은 도전과 싸우며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어쩌면 나는 '나이가 들어감'을 '늙어감'으로 둔갑시켜 현실에서 도망칠 핑계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그날 새벽 묵묵히 기도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그 어머니는 딸이 아파서 힘든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딸이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를 보내고 계실 거라고. 그래서 그 어머니의 하루도 분명 행복으로 채워져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나는 오늘 이 세상의 모든 환자 보호자를 응원하며, 나의 하루를 힘껏 살아내려 한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