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평생의 아픈 기억이 되지 않기를
나는 존재한다.
거창한 철학적 선언이 아니라도, 나는 물리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늘 어딘가에 머문다.
아침의 온기가 남은 집, 치열한 호흡이 오가는 직장, 무표정한 사람들이 섞이는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술집과 밥집까지
나의 발길이 닿는 모든 곳에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존재는 결코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나의 존재 곁에는 늘 누군가가 함께 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오랜 시간을 공유한 친구, 어색한 인사를 나누는 직장 동료
그리고 길가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름 모를 누군가까지
우리는 서로의 존재 안에 겹쳐져 살아간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곳에 잘 존재해야만 한다.
단순히 그 자리에 머무는 것을 넘어, 어떻게 머무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나의 무심한 말 한마디, 혹은 배려 없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오늘 하루의 얼룩이 되고, 한 달의 괴로움이 되며
심지어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아픈 기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픔을 품게 된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나쁜 기억의 씨앗을 전할지도 모른다.
나의 존재가 부정적인 연쇄 반응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때로 서늘한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만약 나의 존재가 올바르지 못하고 흐릿하다면, 내가 행하는 그 어떤 일도 진심으로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근본이 흔들리는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듯, 존재의 중심이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취는 모래 위의 성과 같다.
반대로 나 자신이 스스로 옳은 삶의 증거가 되고, 그 결이 명확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내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 나의 존재 자체가 내 일의 정당성을 증명해 줄 것이다.
나의 명확한 존재감은 단순히 일을 인정받는 수준을 넘어선다.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따뜻한 풍경이 될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내가 머무는 공간과 만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나는 오늘 그곳에서 어떻게 존재했는가. 나의 존재가 누군가의 인생에 선한 자국을 남길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내가 머문 자리가 조금 더 맑아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