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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코가 완전히 고장 났나 봐...

알러지성 비염과 에어컨의 상관관계

by 조항준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온 지 6개월째, 23년 5월에 와서 지금 11월이니 어영부영 여기 생활도 반년이나 지났다.


내 인생에 해외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니... 처음에는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4월에 발령을 받고 한 달 반 만에 정신없이 준비해서 도착한 싱가포르는 다행히 나를 아주 뜨겁고, 또한 아주 차갑게(?) 나를 반겨주었다.


한국의 5월이면 이제 봄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였고 추운 날씨보다는 더운 날씨를 좋아하는 나에게 더운 나라싱가포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장점 중에서 한 가지 크게 기대했던 건... 내 오랜 비염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이곳에 오기 전, 한국에서 친하게 지내던 형님이 미국 달라스에서 4년 정도 살면서 그곳의 따뜻한 기후 덕택으로 극심했던 비염이 많이 완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싱가포르는 적도와 거의 일치하는 나라로 일 년 내내 덥고 상대적으로 습한지라 나는 이번 기회에 내 오랜 숙적, 비염을 물리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싱가포르는 주변국가에 비해 공해 발생이 적고 황사도 없을뿐더러 날씨도 덥고 습하여 기관지 계열이 좋지 않은 나에게는 어쩌면 최적의 장소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이곳 생활 한 달이 채 가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곳의 엄청난 에어컨 때문.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비롯하여 소평몰, 건물, 마켓 등 웬만한 실내는 외부와 최소 15도 이상의 차이가 나도록 에어컨이 돌아갔다.

심한 기온차와 건조함에 반응하는 내 코는 여지없이 에어컨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휴지가 싸여가기 시작했고, 난 알레르기 비염약을 달고 살아야 했다.

한국의 여름에 별로 반응하지 않던 내 코가... 여기서는 3일이 멀다 하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비염이 있는 사람들은 나의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유쾌한 묘사가 아니므로 자세한 증상은 생략 한다)


하지만, 싱가포르가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에 에어컨이 큰 역할을 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 적도의 나라들은 일 년 내내 덥다. 한낮의 기온이 34~6도 사이지만 체감온도는 40도를 훌쩍 넘는다.

이렇게 더운 조건은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만들고 업무 능력도 저하된다.

동남아에 야시장이 흔한 이유도 더운 낮을 피해 비교적 시원한 밤과 새벽에 활동이 더 수월함을 반증하는 것이겠지...


싱가포르는 에어컨을 이용해 실내를 쾌적한 온도로 유지함으로써 더운 날씨로 싱가포르 진출을 꺼려하는 외국 기업들의 유치에 성공하고 세계적인 금융 및 중계무역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내 책상 바로 위에서 내려오는 강력한 에어컨 바람으로 난 30도가 훌쩍 넘는 이 나라에서 안쪽에 털이 달린 후드 집업을 입고 일하고 있다. 내 동료들은 겨울 패딩이나 코트를 입고 일하는 이들도 있다.


에어컨들 조절하면 되지 않냐고? 오래된 건물이고 중앙 공조 방식이라 유닛별로 조절이 불가하다...

결국 내가 있는 사무실 쪽을 조절하면 누군가는 더위에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


콧물 나게 고마운 에어컨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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