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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한 번에 통과해야 해....

ㅎㄷㄷ 했던 운전면허 시험

by 조항준

소위 자동차 번호판 값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는 COE (Certificate of Entitlement)만 해도 억대를 호가하는 싱가포르에서 감사하게도 회사는 내 사정을 고려하여 리스한 자동차를 사용하도록 해 주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전임자 분은 일본제 중형차를 사용하고 계셨는데, 나에게는 한국제 준중형 차로 바꿔준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싱가포를 사정을 모르는 상황에서 '차별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자동차 값이 비싼 줄을 모를 때 이야기였다.

싱가포르에 나보다 오래 계셨던 분께 들었는데, 회사에서 큰 결정을 한 거라고 한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 게 싱가포르에서 차 끌기다...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 국제운전면허를 발급받고 나와서 이걸 바탕으로 운전을 했었다.

물론, 전임자로부터 들어보니 싱가포르에 1년 이상 체류하며 운전을 하는 사람은 1년 이내에 반드시 싱가포르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국인이 운전면허를 보유하고, 국제 운전면허를 가진 상황에서 싱가포르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면허 필기시험에 해당하는 BTT (Basic Theory Test)를 통과해야 한단다.


당장 해야 할 일도 많고 가족도 보살피고 해야 했던 터라 이야기를 듣고도 "따야지... 땨야 하는데..." 하고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다가 퍼뜩 정신이 들어보니... 1년이 도래하기까지 석 달 여 밖에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 모의시험 및 실제 시험을 신청하고 공부모드에 들어갔는데... 일반적으로 기출문제는 모두 기본 상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아주 어렵지는 않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어였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싱가포르는 4개의 공식언어가 있다. 그것은 중국어(보통어), 인도어(타밀어), 말레이어 그리고 영어... 그렇다. 시험은 영어로 봐야 한다...


앞이 캄캄했고 문제집을 쳐다볼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싱가포르인 직장동료는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지만 영어가 많이 딸리는 나로서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시험에서 떨어지면 재응시에 최소 한 달 여가 다시 소요되는 상황으로 자칫 잘못하면 회사에서는 차량 리스비용을 내고 있지만 나는 운전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매우 긴장하였다. 다행히 얼마 전에 BTT 시험을 본 현지직원이 시험 기출문제가 나오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고 알려주어 3주 동안 몇 번이고 끊임없이 문제들을 풀어본 결과 8할 이상의 문제들은 문제만 봐도 답을 맞힐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드디어 시험당일.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가서 시험을 보았고 시험결과가 답안제출과 동시에 확인이 가능하여 나는 50문제 중에 49문제를 맞혀 통과하였다!!! 오래간만에 합격의 영광을 누리는 것도 잠시, 시험에 합격했으니 이제 Conversion 신청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이 바로 찾아왔다.

시험 응시를 인터넷으로 요청한 것은 3월 중순, 4월 9일에 시험 합격을 하고 이것저것 알아보니 인터넷으로 관련 서류등을 업로드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 4월 15일에 싱가포르 교통경찰 사이트에 접속하여 모든 서류를 업로드하고 제출 완료 버튼을 클릭하자, 이메일로 오토 메시지가 날아왔다. 대충 내용은

"제출 서류 잘 받았고 요즘 심사요청이 폭증해서 서류에 문제없는지에 대한 회신은 최대 6주 이내에 줄게"

라는 내용이었다.


요청은 4월 15일, 내 면허 만기 도래는 5월 15일로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는데 6주가 걸린다니...

하지만 6주가 도래하는 5월 말이 되어도 나는 아무런 연락을 싱가포르 교통경찰로부터 받지 못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낸 문의 메일의 회신으로 온 것은

"면허 신청자가 워낙 많아 지연되고 있어... 좀 기다려줘..."라는 답변.

6월로 넘어오고서야 받은 이메일은 이랬다.

"인터넷으로 제출한 서류는 다 확인했고 문제없네... 이제 실물 서류 가지고 와서 신청하고 돈 내. 6월 25일에 교통 경찰청으로 와"였다...

문제는 6월 17일부터 말까지 한국 출장이라는 것.

다시 이메일을 보내 싱가포르에 없으니 미뤄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받아 들어 7월 2일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7월 2일 오전 늦지 않게 출발했건만 아침부터 쏟아지는 비로 약속시간을 조금 넘겨 겨우겨우 도착해서 정신없이 서류를 작성하고 제출하였다. 결과적으로 신청은 완료되었으나...

"면허는 10일 이내에 우편으로 보낼 거니까 확인해 봐"

O.K 하고 돌아서다 아차 싶었다... 우편함 열쇠를 아내가 가지고 있는데 아내는 한국에서 8월 중순이 되어야 돌아온다...

알고 보니 면허증은 우리나라 등기 우편처럼 집배원이 직접 배달하는 거였지만 가족은 한국에, 나는 직장에 있는 평일 오전, 오후 시간에 등기 우편 방문 전달이 가능할 리 만무했다. 연락을 기다렸지만 전화도 오지 않은 상황.

보름을 더 기다려 등기 우편이 다시 경찰서로 회송된 것을 확인하고 연락을 하여 약속을 잡은 후 다시 찾아가 겨우 받은 면허증. 3월에 최초 신청하여 면허를 받기까지 거의 5개월이 걸렸다.

20250806_153107 - 복사본.jpg 너... 너무 범죄자 같나?

결국 받아낸 면허증... 내 인생에서 최초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취득한 국가 공인 자격증이 올 시다~!


지금은 걱정 없이 잘 다니고 있지만 당시에는 참으로 익숙지 않은 일이었다.

새삼 대한민국의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지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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