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이 어떻게 싱가포르의 발전에 기여했는가
이곳에 살게 된 지도 2년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어컨 온도이다. 이 서울만 한 나라는 나라 전체가 에어컨을 틀어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실내에 들어가면 무조건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지구 북반구에 위치한 나라 중에서 적도에 가장 가까이 붙어있는 나라 중에 하나인 싱가포르는
아침과 저녁에 해 뜨고 지는 시간도, 일 년 내낸 피어있는 꽃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스콜도 항상 똑같지만 놀랍게도 다른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서는 그렇게(?) 덥지는 않다는 거다.
적도 무풍지대에 속해있어 덥고 습한 건 사실이지만 연평균 기온이 대략 28도 정도로 낮에는 보통 31~35도, 밤에는 보통 25~28도 사이정도 된다. 걱정스러울 정도로 여름의 온도가 치솓는 요즘은 오히려 한국에서 오신 출장자 분들이 싱가포르가 여름의 한국보다 좀 더 선선한 느낌이라고 하는 말을 듣고는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하지만 더운 건 더운 거다. 잊지 말자 여긴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다.
한 해 한 해 지나가고 쉰 살이 가까워지는 나이를 몸이 제일 먼저 알듯이 새벽 5시만 되면 떠지는 눈을 다시 감고 잠에 들게 할 방법을 찾기 힘들어진다. 애혀... 누워만 있음 뭐 하나 싶어 주섬주섬 일어나 아침 조깅을 나서본다. 옷을 갖춰 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뜨뜻 미지근~~ 한 아침 공기가 맨 먼저 살갗에 닿는다. 전날 저녁 7시에 해가지고 거의 10시간이 지났건만 공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근무 환경의 특성상 주로 동남아 국가들을 출장 다니는 나로서는 그동안 베트남, 필리핀,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을 다녔는데 다닌 나라 모든 곳이 다 더운 나라들이다.
그중에 인도는 압권이었다.
그 덥다는 8월에 아무것도 모르고 첫 출장을 간 나에게 첸나이는 그야말로 불지옥이었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부는 바람은 열풍이었고, 내리쬐는 햇빛은 내 피부를 관통할 듯 아팠다. 40도~45도의 온도를 넘는 것은 다반사... 잠시만 차 안의 에어컨을 끄기만 해도 수분 내에 몰려오는 엄청나게 뜨거운 기운들... 이런 상황의 나라들에 비한다면 어쩌면 싱가포르는 행운이리라.
그래도 더운 건 더운 거다... 잊지 말자 여긴 적도의 나라 싱가포르다.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는 "에어컨은 문명을 바꾼 최고의 발명품이며 에어컨이 없었다면 싱가포르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추켜세운 적이 있을 만큼 싱가포르는 에어컨을 나라라고 할 만큼 거의 모든 실내에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다. 당장 마리나베이 샌즈 쇼핑몰에만 가도 그렇다. 밖은 그렇게 더운데 실내에 들어서면 쾌적한 공기에 금방 살 것 같다. 그것도 처음엔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지하 2층부터 지상 2~3층까지 그 엄청나게 큰 공간의 온도를 25도 내외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공공기관의 에어컨 설치였다. 이 에어컨의 설치로 공공기관의 업무효율이 40%나 개선되었다는 연구결과 있을 만큼 더위가 일상인 나라들에게는 이 더위와의 싸움이 또한 일상이 되어간다.
최근 우리나라는 여름만 되면 매년 전력 사용 치를 최대치로 갱신하며 공공기관이나 은행등의 온도 제한을 26도나 28도로 하고 있지만 싱가포르는 그런 거 없다. 대부분의 에어컨 온도는 18도로 설정되어 있어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서도 직원들이 겨울옷을 입고 일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을 싱가포르에 유치할 때에도 더운 날씨로 난색을 표할 때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에어컨으로 발라버리겠다!"라고 했을 만큼 이 나라의 경제 발전에 에어컨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싱가포르는 자가발전 및 이웃 국가에서 전력수입으로 비교적 값싼 전력을 국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일종의 '에어컨 복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집만 해도 벽걸이 에어컨이 6대나 있는데, 집주인과의 월세 계약 안에 3개월에 한 번씩 에어컨 청소를 기본 조항으로 박아 넣을 만큼 에어컨은 이 나라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이런 에어컨 온도에 적응한 듯하다.
점심시간에 되어서 밖에 나오면 너무 강한 에어컨 덕에(?) 얼어있던 내 몸이 따뜻한(?!) 외부기온으로 당분간은 매우 쾌적하여 그 느낌을 조금 길게 가져가고 싶지만 싱가포르 동료들은 그 마저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차에 타자마다 다시 추울 만큼 에어컨을 세게 틀고 추울 만큼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 호커센터나 커피숍처럼 외부에 있더라도 선풍기 수십대가 내내 돌아간다. 더군다나 인구의 80%가 중국계라 차가운 음식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고 커피던 차던 뜨거운 것을 선호하는지라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뜨거운 음식과 뜨거운 차를 마신다는 것은 상상이상으로 고역이리라. 언젠가 한번 싱가포르 동료에게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너네는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평생 살았는데 그래도 더운 게 싫어?"
"응... 더운 거 싫어. 그냥 추운데 살았으면 좋겠어"
내가 필리핀 세부에 놀러 갔을 때였다. 고래상어를 보러 가려면 아침 일찍 가야 했는데, 차를 타고 새벽에 이동하던 중.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시간이 고작 오전 5시 반 정도였다. 물론 대중교통이 미비하여 일찍 나온 것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 이른 시간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학교가 6시~7시 사이에 시작한단다. 이유가 낮이 되면 에어컨은 없고 날씨는 너무 더워서 수업을 할 수 없어 학교는 대략 12시 정도면 끝난다고...
어찌 보면 그래서 대부분의 잘 사는 나라가 추운 북반구에 위치한 이유가 있을 듯싶다.
더위는 질병을 창궐하게 하고, 사람들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싱가포르는 에어컨 덕(?)에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안쪽에 털이 달린 후드티를 입고 비염으로 고생하는 코를 훌쩍거리며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