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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ay Lah~

아... 싱글리쉬~

by 조항준

나의 대학시절의 전공은 일본어였다.

1991년 당시 고 1이었던 나는 알지도 못했던 나라 쿠웨이트에서 일어난 제1차 걸프전을 TV에서 보고 충격에 빠졌고 도대체 누가 저 전쟁터에서 이렇게 생생한 전투상황을 생방송으로 송출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방송국 카메라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그다지 공부는 잘하지 못해 결국 원하는 학과를 가지 못했다. 그저 성적에 맞추어 입시원서를 집어넣은 학과가 일어일문학과였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도 모르시지만, 2학년 1학기 성적은 학사경고였고, 군대 입대 후 복학한 2학년 2학기는 숨이 턱 막힐 만큼 고급 수준의 일본어 구사를 요구했다. 2학년으로 복학했지만 공부를 안 한 탓에 1학년 수업을 들으며 겨우겨우 수업을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그러니 뭐 영어 수준은... 처참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고 그나마 대학교 4학년이던 2000년에 호주에 몇 달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바닥 수준은 겨우 벗어나 중급 정도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주로 일본계 회사를 다녔지만 외국과의 이메일 및 전화는 대부분이 영어였기에 다행히 잊어버리지 않고 사용해 왔다. 사실 그렇다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갑자기 오게 된 싱가포르에 도착하고서야 내가 이 나라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싱가포르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현지 직원과 식사 중에 그 직원이 CNN뉴스를 보고 있길래

나 : " 너 저거 무슨 말하는지 다 이해해?"

현지 직원 :" 응. 넌... 못해?"

나 : "......"

그렇다. 싱글리쉬라고 부르지만 이 나라의 공용어에는 영어가 떡하니 들어가 있다.

싱가포르 공식 언어는 총 4가지로 중국어(보통어), 바하사 말레이어, 인도어(타밀어), 그리고 영어다.

싱가포르를 포함한 말레이 반도는 예전에 영국의 식민지였고, 영국은 19세기부터 싱가포르가 무역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중요한 루트 중의 하나인 말레카 해협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모든 상선이 이 해협을 지날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이 이곳 싱가포르다. (마치 조선시대에 남쪽에서 한양 갈 때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곳이 천안인 것처럼...)


따라서 영국은 이곳 싱가포르를 무역 항구이자 군사기지로 발전시키기로 했고 그러하자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는데, 마침 중국의 정치나 경제 상황은 매우 혼란한 시기여서 영국에서는 싱가포르로의 이주를 많이 장려했다고 한다. 중국뿐만이 아니라 인도에서도 영국은 싱가포르로의 이주를 장려했고 그 결과로 현재 싱가포르에는 대략 75%의 중국인, 15%의 말레이인과 10%의 인도계로 인구가 구성된다. 말레이인들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니 거의 85%의 인구가 중국과 인도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게다가 중국인들의 대부분은 중국 남부에서 온 사람들로 광둥 성, 하이난성, 푸젠 성 등에서 이민을 왔고 인도는 남부의 타밀지역에서 많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싱가포르 공용어 중 인도어는 타밀어가 공용어가 되었지만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 연방에서 독립하면서 싱가포르는 중국어 공용어를 표준 중국어로 적시했는데 당시만 해도 광동, 하이난, 푸젠 성 등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의 방언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웠고 향후 중국이나 대만 등의 중화권과의 언어적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보통어로 지정했다고 한다.


서론이 길었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의 싱가포르는 거의 모든 싱가포르인들이 영어를 구사한다.

다만, 그들의 영어가 내가 알고 있는 영어랑은 좀 많이 달랐다.

일명 싱글리쉬라고 불리는 이곳의 영어는 기본적으로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따라한 건 아니고 미국식의 영어도 섞어 사용한다.

예를 들자면, 보통 트럭을 영국에서는 'lolly'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truck'을 쓴다거나

주유소의 휘발유도 미국은 가솔린을 줄여 'gas'라고 부르지만, 영국에서는 'petrol'이라고 하는데, 싱가포르에서는 그냥 'gasoline' 혹은 'gas'라고 부른다.

이외에도 양쪽의 단어를 모두 사용하거나 한쪽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우리나라 특성상 미국식의 영단어에 익숙한 나에게는 많은 혼란을 주었다. (안 그래도 영어도 딸리는데, 일하면서 공부도 해야 하는...)

더군다나 이들만의 독특한 억양이나 말하는 속도는 또 엄청 빠르고 특이하다.

처음에 왔을 때는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던 시절도 있었다.


게다가, 이들만이 쓰는 싱가포르식 영어의 SLANG도 존재한다. 하나하나 배웠지만... 곧장 잊어버려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기도 한다.


싱가포르에 온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히 알아듣기 어렵지만 처음에 비하면 현재는 많이 편안해지긴 했고, 일상적인 대화는 어렵지 않게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사실은 영어가 많이 딸리는 늙은 한국인 동료에게 쉬운 단어와 적당한 속도로 말해 주고 있음이리라...)


한때는 아무리 듣고 말해도 늘지 않는 나의 영어를 보고 '이제 늦었구나'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 주제 중인 한국인 후배가 한마디 해 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사실, 나의 모국어는 한국 어지 영어가 아니다. 물론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면 더 좋겠지만 모국어가 아닌 이상 내가 외국어를 완벽하게 듣고 말하지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저 매일매일 배우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사고 치며 다시 일어나면 된다.

내 인생에 이 시간은 매우 특별한 시간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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