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야 제발 버둥거리지 마....
우기와 건기만이 존재하는 이곳 싱가포르는 1년 내내 덥고 습하다.
이러한 최적의 조건으로 다른 동남아 국가들처럼 벌레가 득시글 할 듯 하지만, 의외로 나는 이곳에 온 이후로 거의 모기에 물려 본 적이 없다.
동남아는 뎅기열이나 말라리아와 같이 모기를 매개로 이동하는 바이러스들이 있어 사전에 예방주사를 접종하는 경우도 많은데, 급작스런 회사의 발령으로 정신없이 준비하고 싱가포르에 입국하고 보니... 아차! 전염병에 대한 접종을 하나도 하고 오지 않은 게 생각났다. 혹시나 하여 베트남 법인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에게 접종여부를 물어보니 웬만한 건 다 접종하고 들어갔다고 하던데 왜 난 아무것도 안 했나 후회가 들었다.
근데 모기가 없다니...
우리 집도 아침부터 문을 열어놓고 있다가 너무 더워지면 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지만, 모기가 들어와 물린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숲 속이나 동물원 등은 모기에 물릴 수도 있지만(나도 몇 번 물렸었다) 집에서는 거의 1년 가까이 한 번도 물린 기억이 없다.
알고 보니 싱가포르는 열대 기후이고 서울만 한 섬나라에 인구는 600만이며 또한 수많은 관광객이 다녀가므로 (2023년 싱가포르 방문 관광객은 거의 1천6백만 명에 육박한다, 참고로 한국은 2천3백만 명)
인구밀도도 상대적으로 높아 전염병에 매우 민감하여 방역을 수시로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콘도에도 매주 화요일마다 바퀴벌레, 쥐, 모기 같이 전염병을 옮길 수 있는 유해생물에 대한 방역을 하고 있다. 매주 하다 보니 사실상 거의 모기나 바퀴벌레를 보기는 어렵다.
다만, 방역을 한 다음날이 문제이다...
아침에 출근을 위해 주차장 층에 내려 문을 여는 순간, 엄지 손가락 만한 녀석이 문 앞에 누워 버둥거린다.
크기가 꽤나 커서 자세히 보면 얼굴도 보일 듯 한 녀석이 약에 취한 건지 잠에 취한 건지 사지가 아니고 육지(다리가 여섯 개니깐...)를 허공에 휘젓고 누워있으면 벌떡 일어날까 봐 무서워서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얼마 전에는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위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구석을 향해 뛰어가는 바퀴벌레와 조우하고 말았다... 아들놈이 전날 자기 전 샤워를 하여 물기를 말리기 위해 창문을 열어놨는데 그 틈으로 들어온 모양이다... (3층인데....)
살충제를 들고 와 놈에게 분사했지만... 좁은 틈을 뚫고 안방으로 도주! 침대 뒤로 숨어버렸다.
기겁을 하는 아내와 뭣도 모르고 "벌레! 벌레!"를 외쳐대는 아들놈을 뒤로하고 침대 분해에 들어갔다.
킹 사이즈 침대라 매트는 엄청 무거웠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다행히 살충제를 직통으로 맞아 뒤집어진 상태로 약에 취해 있었다... (으... 징그러~)
겨우겨우 처리하고 샤워를 끝으로 그날의 소동은 마무리되었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그 이후로 항상 발 밑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며칠 전에는 마나님의 명령으로 쌀통에 쌀을 붓고 있는데, 뭔가가 내 옆으로 후딱 지나간다.
너무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쌀 포대를 떨어뜨릴 뻔했는데,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도마뱀이다.
새끼손가락 만한 도마뱀인데, 이 녀석은 그나마 사람을 물거나 병을 옮기지는 않고 때때로 집으로 들어온 작은 곤충을 잡아먹기도 하여 그냥 두었다.
근데, 여기 오래 사신 분이 시끄럽고 울기도 하고, X도 싸서 굳이 집에 둘 이유가 없다고 하여 온 방을 휘저어 겨우겨우 내쫓았다.
뭐... 여기 살다 보면 숙명처럼 마주쳐야 하는 녀석들이지만. 어떨 때는 사람이 와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이 피해 가는 경우도 봤다.
앞으로도 만나겠지만... 가급적 아주 조금만 만나자 우리... 그리고 만나면 최대한 빨리 헤어지는 걸로...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