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 값이 얼마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싱가포르의 자동차 시세 그리고 COE

by 조항준

2023년 5월에 나는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13년 전인 2010년에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3박으로 와 본 싱가포르가 다였던 나에게 사실상 완전히 새로운 세상과 다름이 없었다.

나의 전임자는 나에게 불과 열흘의 인수인계만을 하고 귀국했는데, 회사에서 그에게 준 차는 일본 브랜드의 중형차였다. 그래서 난 그 차를 내가 물려받아 타게 되는 줄 알았다.

나도 한국에서 같은 차를 몰아봤고 그 차의 신뢰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내심 좋아했는데, 회사에서 내 차를 한국 브랜드의 준중형 차로 준다는 소식을 듣고 살짝 기분이 상하였다...

내가 전임자보다 직급이 낮아 차를 작은 차를 주나 보다.... 싶었다.

도착한 지 2주가 지내 일본차는 반납이 되고 새로운 차가 왔지만 그나마도 누군가 타던 중고 렌터카였다.

표현은 안 했지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차를 받고 며칠이 지나 다른 한국 주재원을 만날 기회가 생겨 통화를 하다가 우연히 차 이야기가 나왔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던 나에게 '그 회사는 차를 다 주네요....'라며 이야기하는 상대방이 의아했다.

차가.... 뭐 어쨌다고?


만나서 들어보니 그 양반 말씀이 아마 싱가포르에 주재하는 한국 주재원 중에 절반 이상은 차가 없을 거란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나라도 작은데 대중교통이나 택시, 차량 공유 플랫폼도 잘 되어있으니까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차량 가격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전 세계에서 차 값이 가장 비싼 나라가 바로 싱가포르였다.


기본적으로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이 고작 서울보다 조금 큰 수준의 나라이므로 도로교통망 건설에도 한계가 있어 대중교통을 촘촘히 깔고 차량 수요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교통 정책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차를 사려면 먼저 COE(Certificate of Entilement)라는 일종의 자동차 소유 허가증을 구매해야 차량 구매가 가능하다. 이 COE는 한번 구매하면 10년 간만 유효한데 그 말은 10년이 지나면 허가증은 EXPIRE 되고 다시 구매해야 한다. COE 구매 비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달라지는데, COE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고 이를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면 COE의 비용은 상승한다.

2023년 여름의 경우에는 COE의 가격이 치솟아 약 1억 5천만 원에 육박했다.... 차도 아니고 소유권을 사는 데에만 1억이 넘게 든다니...

거기다가 여기에서 판매하는 차량의 가격도 넘사벽이다. 보통 소형차 한 대 값이 1억이다.

즉,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소형, 준중형 차를 여기서 소유하고 있다는 건 이미 최대로 약 2억 5천만 원을 지불했다는 의미가 된다. 거기에 각종 세금, 이를테면 자동차 등록비, 소비세 및 증명서 등등의 비용을 지불해야 차량을 소유할 수 있다.

게다가 싱가포르에서 무료 주차장은 거의 찾을 수 없고 주차장에 따라 주차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쇼핑몰, HDB, 공공 주차장은 모두 유료이다. 또한, 싱가포르 내의 일반도로가 아닌 일종의 고속도로가 많이 있는데(우리나라로 치면 시내 고속화 도로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도로는 우리나라 하이패스 같은 전자 요금 징수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어 혼잡시간에는 자동으로 요금을 징수한다. 그것도 혼잡시간에 따라 징수 요금이 바뀌어 같은 도로를 달리더라고 조금 덜 혼잡할 때는 차량당 2~4불을 지불하나 많이 혼잡하면 요금이 올라간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이곳의 유가이다. 아마도 요즘 한국 휘발유 값도 리터당 거의 1천7백 원에 육박해 많이 비싸긴 하던데 여기 일반 휘발유 값은 리터당 2.9불, 한화로 약 2천9백 원이다. 고급 휘발유의 경우에는 리터당 거의 4천 원에 육박한다.


2022년 기준 싱가포르에는 약 100만 대가량의 차량이 있는데, 그중에 60만 대가량이 일반 승용차, 2만여 대가 버스, 렌터카가 8만여 대, 택시는 약 1만 5천여 대, 오토바이가 14만여 대, 트럭 및 기타 장비차량등이 약 14만 대이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국토 면적은 적은데, 차량 숫자를 규제하지 않으면 아마 싱가포르 전체가 주차장이 될 거라는 건 누가 상상해도 금방 알 수 있다.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전체 국토의 12%인데 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지금도 신규 도로가 건설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자들은 차량 가격이 얼마던 상관없이 고급차를 몇 대씩 소유하는 사람도 많아, 도로에서 온갖 최고급 승용차나 스포츠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걸 알게 된 후 나는 회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소형차면 어떻고 누가 타던 차면 어떠냐... 회사가 나에게 차를 줬다는 건 거의 3~4천만 원 되는 연봉을 추가로 준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열심히 일해야지... ㅎ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거대한 곤충의 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