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그, 그녀…
요즘 도서관엔 수상하기 짝이 없는 제목들이 넘쳐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수상하고, 그나 그녀라는 익명성에 흥미를 가질까? 떠오르는 현대 문학작품들을 꼽아보면 이 변화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 장길산(1984),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라(1993), 채식주의자(2007)까지. 70~2000년대까지는 여전히 '실명'의 시대였다.
하지만 사진을 보면,
이 정도면 나 빼고 모든 게 수상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우선 무엇이 수상한 지에 대해 알아야겠다.
세탁소, 편의점, 가게..
이 모든 곳은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일상의 평범한 공간이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우리는 삭막한 일상에서 한 줄기 탄산음료 같은 희망과 함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다음, 수상한 사람.
이들 대부분은 가성비 좋은 캐릭터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수상한 이웃은 이 사람도, 저 사람도 그 빈자리에 투영될 수 있다. 책임으로 넘쳐나는 현실에서 피곤을 느끼는 현대인에게는 이제 구체적이고 끈적한 관계가 부담스럽다. 반면, 이러한 소설에서는 익명의 존재와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연대와 공감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
일상이 너무 피곤한 나머지 픽션 안에서라도 자유로워지고 싶은 현대인의 바람인가.
혹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에 더 이상 의문을 가지게 되지 않아서일 지도 모른다.
인간은 더 이상 현실적인 것을 찾지 않는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만 해도 '수상'한 것들 천지다.
AI는 우리에게 주전자 물이 끓을 시간보다 빨리, 그 자리에서 답을 준다. (위의 현대문학 발행연도도 그 이름마저도 '수상'한 제미나이가 5초 안에 알려주었다.) 존재하는 데이터를 학습하여 정확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AI는 충족시켜 줄 수 없는 부분, 그것이 익명성 아닐까.
넘쳐나는 의문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인간인 우리는 불나방처럼 익명의 무엇인가, 미지의 무엇인가에 불가항력적으로 이끌리는 것 아닐까.
얼마나 안타까운가, 인간이란.
얼마나 가련한가, 우리들은.
사서 고생이라더니 사서 수상해지고 있으니..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한 채로 수상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평범한 40대 중년 여성이 낮에 저렴한 테이크아웃 위주 카페에 앉아,
유행 지난 정장을 입고,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휘핑크림을 잔뜩 얹은 핫초코를 홀짝 거리며,
핸드폰 자판을 가히 신의 속도로 두드리다,
전화를 받고 빛의 속도로 뛰쳐나가는 나를,
(십중팔구 아이의 전화)
누군가는 수상한 사람으로 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