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영어연설클럽에 가입한 지 1년이 되었다.
영어도 생소한데 거기에 연설이라니. 내 인생에서 맹세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분야라 첫 방문 이후 절대 가입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1년 전이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클럽의 홍보부장이라니.. 정말 인생이란 알 수 없다.
클럽의 모임은 잘 구조화된 회의 시스템 하에 이루어진다. 정해진 시간 내 짜인 정해진 활동, 모임이 구성되기 위한 역할들. 여기에서 영어 스터디 그룹과의 차별점이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가입 초기에는 시스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도 있다. 다행히 내가 가입하자마자 클럽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원을 위한 '브리지(bridge)' 모임이 생겼다. 말 그대로 신규 회원이 정규 모임에 조금 더 빨리 익숙해지기 위한 '다리'가 되자는 취지의 모임이었다. 덕분에 그 혜택을 누린 건 나다. 안 그래도 꼴 사나운 내 모습이 싫어 작은 실수도 용납이 안되는데, 브리지 모임이 없었다면 1년 간 모임에 매번 참석할 용기도, 매번 역할을 맡을 배짱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입과 동시에 생겼으니 브리지 모임 역시 1년이 되어간다. 1년 정도 되니 나도 머리가 컸는지 불만 하나가 슬 고개를 쳐든다. 언제까지 '브리지' 이름을 달고 있어야 하나. 이제 다리 중간 정도는 온 것 같은데 아직도 이 '초보 딱지'를 달고 있어야 하나. 특히 내 손으로 정규 모임과 브리지 모임을 달리 구분하여 홍보자료를 만들 때마다 자존심도 상하고, '한낱 아줌마'들의 아침 모임 정도로 취급받는 것 같아 속도 상한다. 하지만 10년 정도 활동을 한 회원들도 많아 초보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초보 딱지 인생이었다. 세상에 태어나 신입, 초보 운전, 새댁, 그리고 초보 엄마까지. 그중 가장 떼고 싶은 딱지는 초보 엄마다. 어느새 아이는 5학년이 되어 이제 육아라는 말이 민망할 만도 한데, 나는 여전히 아이 뒤치다꺼리만으로도 하루가 다 가는 초보 엄마다. 하루 동안 내 의지와 다르게 매서운 말도, 무섭게 혼도, 심지어 내 화에 못 이겨 짜증도 낸다. 내년엔 나아지겠지, 이제는 나아지겠지 하던 것이 어언 십여 년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초보 엄마는 아직도 허둥대고 있어 엄마 자격 미달이 아닐까, 초조해진다. 특히 이번 겨울 방학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어가는데, 어제저녁에 양치를 하다 깜짝 놀랐다. 미간에 주름이 깊이 잡혀 있는 게 아닌가. 저녁에 거울을 보기 전까진 내가 인상을 쓰고 있다는 것도,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거울을 봤다는 것도 몰랐다.
언제쯤 초보 엄마 딱지를 뗄 수 있는지, 그런 때가 오긴 하는 건지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가끔 대기조처럼 가족을 돌보기 위해 집에만 있는 현실이 서글프다. 거울에는 보람으로 빛나는 얼굴은 없고, 세월의 흔적만 보여 우울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제 새벽 내 아픈 아이를 돌보느라 침대맡을 지키며 내가 느꼈던 감정은 답답함이나 자괴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충만함이었다. 엄마로서 있어야 할 자리를, 필요를, 쓸모를 확인하며 나는 오래간만에 충만감을 느낀 것이다.
어쩌면 내가 브리지 모임에서 초보 딱지를 떼고 싶었던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초보가 아니라는 반발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초보 딱지를 떼려고 다리를 건널 생각만 하고, 다리 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놓치고 있어서는 아닐까. 초보자의 초조함은 더 나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허둥대더라도 아이 곁을 지키며 느꼈던 그 충만함이 나를 진짜 엄마로 만들어 왔듯, 브리지 모임에서의 초조함이 결국 나를 진정한 성장으로 이끌 것임을 믿는다. 다리 위에서 흔들려 본 사람만이 건너편 땅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내년에는 다리 위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생기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