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의 참 좋은 날

by 구기자

"엄마가 기자 니를 낳으려고 병원에 갔을 때 마침 옆에 산모 한 명이 더 있었거든. 줄줄이 딸을 이미 다섯이나 낳은 거라. 그런데 시아버지가 이번에도 딸이면 내가 기른다고 사정사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했지. 그때부터 그 할배가 며느리한테 살아있는 참개구리를 먹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아들 낳을 수 있다는 말만 들으면 안 해 본 게 없다대. 천만다행으로 그때 아들을 낳아서 망정이지 참.."


이번 설, 엄마를 모시고 우리 삼 남매는 여행을 갔다. 덜컹거리는 전철 속에서 엄마의 어떤 한 마디는 내 머릿속을 더 덜컹거리게 만들었다. 속절없이 비죽비죽 나오는 눈물을 보이기 싫어, 여행을 망치기 싫어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구구절절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고서..

모두 지웠다, 한 글자도 남기지 않고.

그러니 이 글은 퇴고가 아닌, 순수한 초고이다.


글을 지운다고 해서 그날의 기억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야기를 풀어낸다고 해서 내 생각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런 시절을 산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시대를 사는 나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었노라고. 하지만 이 역시 여기에서, 이런 방식으로, 내 선에서 마무리짓기로 마음먹었다.


이를 테면 그런 것이다.

나는 최소한 그녀에게 살아있는 청개구리를 먹이진 않았으니 죄가 없다. 그녀는 나를 낳고 빈혈이 왔다고 했다. 바나나가 무진장 비싸던 그 시절, 그녀는 내덕분에 바나나를 먹기까지 했으니 내겐 죄가 없다. 궤변 같이 들릴 수도 있지만, 궤변이기에 이 상황을 내게 납득시킬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내가 가장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때, 가장 가장 비이성적인 때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가장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할 때, 역설적으로 가장 이성적이기 때문에 비이성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물을 이미 한껏 머금은 화선지다. 조금만 손을 대어도 나는 갈가리 흩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게 궤변이 아니고서는 마음을 가다듬을 방법이 없다.


인생은 원래부터 괴롭다. 이번 일이 아니었어도 괴로운 일은 내가 예상치 못할 때 기대하지 않은 방식으로 기꺼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러니 못 견디게 괴로워할 것도, 미리 움츠러들 것도 없다. 그저 묵묵히 새 글을 써 내려가듯이 살아갈 뿐이다. 그래서 내 인생은 퇴고가 아닌 초고의 시간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지금의 나 역시 예전의 나와 같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을 붙들고 있을 시간에 묵묵히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생의 본능에 의해.


참 좋은 날이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 위기는 계속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런 때야말로 퇴고가 아닌 초고를 쓰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어서, 그래서 참 좋은 날이다.


됐고, 한 잔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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